니카람바 폭포 이야기.
우리 팀은 매주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며 사역을 하였는데 쉽게 설명하자면 부산에 거점을 두고 매주 3박 4일간 한주는 강원도, 한주는 전라도, 또 다른 한주는 충청도쯤을 돌은 셈이다. 첫 주에 찾은 곳은 블란타야(말라위 제2의 도시)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뮬란지 지역이었는데 차를 타고 다니는 내내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절경이었다.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블란타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말라위에서 가장 높다는 뮬란지 산(해발 3천 미터)을 마침내 오르기로 했다. 풍광이 아름답고 하이킹 트래킹 코스가 잘 개발되어 있어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는데, 차를 타고 산을 조금씩 오를수록 주변은 조용하고 단정해졌다.
초입에 목공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 규모의 가게를 본 적이 없어서 좀 놀랐다. 여러 점원들이 차를 막고 나서서 호객행위도 열심히 했지만 가볍게 통과. 조금 더 들어가니 호젓한 산장이 나타났다. 잘 정돈된 정원, 단순하지만 숙소와 레스토랑이 있는 아담한 건물이 나름 깔끔해서 또 놀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붕이 제대로 덮인 집들을 많이 못 봐 그런 것 일수도 있다. 주인장이 미국인 이라던가.
스코틀랜드에서 캠프를 왔다는 남자 고등학생들이 이십 명 정도 마당에서 쉬고 있었다. 인솔하는 교사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먼 곳으로 봉사를 하러 왔단다. 놀라워라. 그러고 보니 호주 최고의 사립 여학교 피엘씨(성적 학비 명성 면에서)도 이곳 현지 학교와 결연을 맺고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캠프를 온다. 심지어 이곳 학생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도 하며 세상의 다른 한쪽을 체험한다. 왜 부자들은 귀한 자녀를 이런 곳으로 여행 보낼까? 눈도 입도 딱 벌어지는 낯선 환경을 접하며 시야도 넓히고 생각도 깊이 해보라는 뜻이 아닐까?
가이드 두 명이 따라온다 하여 가격을 흥정하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다. 여기가 아프리카인가 스위스인가. 알프스는 저리 가라였다. 하늘은 푸르고 맑았다. 미세먼지 한 톨 섞이지 않은 듯 바람은 가볍고 신선했다. 어디를 가든 늘어서있던 노점상들이나 길가를 걷던 무수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신선들이 노닐만한 청정 자연이 별안간 눈앞에 딱 나타난 것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방을 둘러볼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들이 놀라웠다. 우리는 유유자적 걸으며 저마다의 상념에 빠졌다. '아! 다행이다. 말라위에 이런 산이 있어서. 존재만으로도 저 가난한 자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인가!'
등산길은 평이했고 우리는 상대를 바꿔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간 경험했던 말라위에 대한 소회와 남은 일정들, 혹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등등을 망라한 대화들이 오갔다. 팀원들이 가까워졌고 소중해졌다.
산자락 끝에서 니카람바 폭포를 만났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투명한 폭포와 티 없이 녹푸른 호수. 누군가는 이미 웃통을 벗어젖히고 기암 위로 올라가 다이빙을 하고 수영을 했다. 발을 담가보니 물은 차가웠다.
저 밑 세상의 인생사는 빛바랜 흑백영화처럼 뿌옇고 때에 찌들어있는데, 하나님이 창조한 그 모습 그대로의 대자연은 총천연색으로 찬란하게 빛이 나는구나! 한 폭의 그림 같은 이 풍경 속에 빠져 잠시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고 감사할 일인가!
한참을 앉아 폭포수의 노래를 들었다. 산을 오르기 전, 필요하지도 않은 가이드를 2명이나 붙이려는 억지가 어이없어 가격을 흥정했는데 이곳에 머물다 내려가려니 그냥 팁을 더 붙여주자는 쪽으로 마음이 돌았다. 우리가 즐거우니 가이드도 즐거우면 좋지 않겠나.
자기가 먼저 죽으면 일본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라고 일본인 아내에게 말했다는 중년의 호주 남편 얘기를 들으며 호주 남자와 사는 말레이시아 여인과 싱가폴 남자와 호주에 사는 나는 또 생각한다. '무슨 그런 얘기를...' 하다가 '그 생각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아' 쪽으로 기운다. 삶의 여정엔 새로운 질문들이 다가온다. 답이 뭐가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모른다고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살다 보면 풀릴 일이다.
한 치 앞을 모르지만 그냥 걸어보라고 뮬란지 산은 내게 말했다.
다시 산장으로 내려오니 늦은 점심을 먹을 때다. 산을 오르기 전 이미 담당자와 예약을 하고 주문까지 했건만 테이블은 세팅되어 있지 않고 갑자기 식비를 미국 달러로 내라 해서 당황했다. 말라위에서 자기 나라 화폐 '콰챠' 받기를 거부하다니 이건 또 무슨 경우인지.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이 사람 저 사람 주머니를 털고 지배인을 불러 대화를 거듭하며 또 한 끼 식사를 마쳤다.
그래도 옆 테이블의 스코틀랜드 학생들과 무슨 노래를 합창으로 같이 부르며 산이 너무 아름답지 않냐며 여행이 너무 즐겁지 않냐며 말라위가 너무 매력적이지 않냐며 흥을 냈다.
여기는 아프리카다. 그냥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 보자. 크게 손해 보는 게 아니라면 너무 따지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