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가 아쉬워.
말라위로 여행 가기 전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식성도 좋고 가리는 것도 없었지만 선입견 때문인지 아프리카엔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을 듯했고, 위생적이지 않을 듯도 했다. 두 가지 걱정 다 맞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여행하는 동안 숙소, 레스토랑 혹은 현지인 가정에서 삼시 세끼를 넉넉히 먹었고 배앓이를 하지도 않았다. 말라위에는 어떤 식재료가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을까, 경험을 토대로 나누어보겠다.
지인 목사님 가정에 초대를 받았다. 높은 담장과 넓은 마당이 있는 저택들이 모여있는 동네라 말라위 상위 5% 이내의 수준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여유로운 마당과 각종 채소를 키우는 밭이 꽤 넓었다. 소작농을 몇 명씩 고용할 정도였다. 뒷마당엔 수확한 옥수수를 말리고 있었는데 이를 가루 내어 반죽한 뒤 쪄내면 아프리카인들이 밥처럼 자주 먹는 '시마'가 된다고 했다.
버섯을 매달아 재배하는 작은 방도 있었다. 집집마다 야채 몇 포기라도 길러 먹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는데 땅은 메마르고 팍팍해 보였다. 가뭄 때문인지 원래 토양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닭을 키우는 집도 많았는데 이 집은 염소 농장에 개까지 있으니 부자임이 확실하다. 염소 한 마리가 문틈으로 빠져나오자 외양간 밑에 매어져 있던 개가 재빨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짖어 염소를 제집으로 돌려보냈다. 호주 대농장에서는 전문가로부터 훈련 잘 받은 보더콜리 농장개가 양 떼를 몰아 사람 몇 명의 역할을 혼자 거뜬히 하는데, 이 집 개는 무슨 훈련을 어떻게 받은 건지 조용하고 민첩하게 제 임무를 잘 수행했다.
묵었던 숙소의 다이닝 룸에서 아침과 저녁을 먹는 날이 많았다. 아침은 계란 감자 토스트 등의 서구식이었다. 흥미로운 건 전날 저녁 '내일 아침 계란을 어떻게 해줄까?' 미리 주문을 받는 것이었다. 오믈렛 스크램블 삶은 계란 등이었는데 방번호와 개수 익힘 정도까지 세세히 물어 피곤했다. 무슨 대단한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꼭 주문한 것처럼 익혀 나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토스트는 미리 구워서 늘 차갑고 딱딱했다. 사람이 밀리는 것도 아닌데.. 뭔가 공은 들이는데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는 서비스랄까. 일하는 사람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지고 어떤 날은 인스턴트커피가 나오다가 어느 날은 원두커피가 나오다가 종 잡을 수가 없다.
저녁은 밥이나 시마에 고기 한 종류, 야채 한 종류, 토마토소스류가 나온다. 밥은 동남아에서 먹는 흩날리는 것보다 오히려 더 한국 밥에 가깝다. 밥을 지은 뒤 잘게 썰은 당근이나 초록 야채를 조금 넣어 색깔을 낸다. 닭고기는 주로 튀겨서 나오는데 씹어도 씹어도 넘기기가 어려울 만큼 질기다. 양계장이 아닌 벌판을 뛰어다닌 닭이고 영계가 아닌 살만큼 산 노계이기 때문이리라. 같은 동물인데 육질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평생 처음 말라위에서 배웠다.
사실 식사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먹을 만했다. 문제는 매일매일 같은 메뉴가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야채나 소스에 약간의 변주가 있기는 했지만 그 폭이 너무 작아 매 끼니가 그 밥에 그 나물인 느낌. 더 큰 문제는 심지어 다른 가정집엘 가도 약속이나 한 듯 아님 다른 메뉴가 없는 듯 똑같은 세트로 나왔다.
토마토는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는 듯 조금씩 들고 나와 길에서 파는 이들도 많았다. 모양이 다양한 감자나 고구마도 흔했다. 아침 과일로 사과 오렌지 수박 바나나가 날마다 한 가지씩 번갈아 나왔다. 바나나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까맣게 변한 것들을 파는데, 달고 맛있다. 식후엔 디저트가 따로 없고 환타나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한 병씩 줬다.
숙소 근처 쇼핑센터에서 점심거리를 살 때도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페스트리나 도넛 등인데 설탕과 버터가 비싸서 그런지 퍽퍽하고 덜 달았다. 한두 번 사 먹다가 흥미를 잃어 숙소에서 미니 전기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어느 날 인가 깊은 시골 골프장 클럽 하우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수영장 농구장등 각종 스포츠 시설을 갖춘 클럽이고 근처에 유명한 뮬란지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전경도 뛰어났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말라위인들은 누구일까 싶은데, 놀랍게도 이런 곳들이 어디를 가나 한두 곳 씩 숨겨져 있기도 했다. 현지인 약간, 외국인을 위주로 영업을 하는 듯도 했다.
모든 고기는 질겼고 서비스는 매우 느렸고 피자는 소고기보다 비쌌다. 메뉴판은 길었지만 주문할 수 있는 메뉴는 몇 가지로 한정됐다. 간만에 먹은 아이스크림은 푸석해서 샤벳에 가까웠다. 그래도 팀의 첫 외식이라 기억에 남는다. 눈앞의 절경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 댁에 점심 초대를 받았다. 두 번째 가정집 방문이었는데 단 두 명만 초대된 소규모 식사자리였다. 보통의 말라위인들이 사는 풍경이랄까. 다 쓰러져 가는 진흙집에 꼬질한 모습이었다. 희뿌연 벽시계가 두 개였는데 둘 다 맞지 않았다. 밥은 한솥 그득했지만 고기며 야채는 턱없이 적었다. 이것이 최선이었을게다. 무례인 줄 알았지만 알레르기를 핑계로 싸 온 도시락을 먹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실제로 약간의 알레르기가 있기도 하고 이제 시작인데 남은 일정을 건강하게 잘 감당하고 싶었다.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지만 함께 간 분은 오는 길에 말했다. '네 선택이 옳았어.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었어.' 초대에 대한 감사와 착잡함이 뒤섞였다. 남은 식구들은 뭘 먹고 사는 건지 심히 염려가 됐다.
어느 날인가 멤버의 80세 생일을 맞아 저녁 식사 뒤 케잌 커팅을 했다. 간만에 먹는 디저트에 모두들 흥분했다. 푸석한 케잌을 반쯤 나눠 먹고 남은 케잌을 통째로 주방의 스탭들에게 주었더니 몹시 놀라며 고마워했다.
잘 찾아보면 그래도 괜찮은 햄버거 집도 있고 세련된 카페도 있다. 어떤 곳은 페이스북에 광고도 하고 온라인 주문을 받기도 있다. 초현대 문명도 곳곳에 있지만 또 다 믿을 수도 없다. 여기는 아프리카다. 직접 가본 뒤에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어느 산골마을 교회 예배를 마치고 저녁 초대를 받았다. 누구 집 대문 앞에 차려진 식사였다. 말라위 여인들은 한상을 미리 차려놓고 숨는다. 식사에 동참하지 않는다. 아내들은 종종 집에서 무릎을 꿇고 남편에게 말한다. 여성의 지위가 많이 약한 듯하다. 식사 전엔 따뜻한 물과 대야를 들고 와 손님들이 손을 씻도록 돕는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경우도 많다. 우리 일행 4명은 모두 사양했고 말라위 목사님들은 맛있게 냠냠. 이즈음 팀원들 중 몇몇이 배앓이를 해서 몸을 좀 사려야 했다. 그래도 식탁 위 대화는 즐거웠다. 식사를 마치고 준비한 이들을 불러 작은 선물을 건넸다.
어느 날인가 튀긴 생선을 먹기도 했다. 뼈가 많아 먹을게 별로 없다. 감자는 볶거나 찌거나 삶거나.
닭은 닭장 안에서 산닭을 고르면 바로 목을 쳐준다. 매우 신선하다. 어릴 때 서울 재래시장에서 이렇게 닭을 샀던 기억들이 났다. 80년대 들어서 사라진 건가 88 올림픽 덕분에 사라진 건가 잘 모르겠다.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방문했던 모든 말라위 가정에서는 손님이 오면 가장 먼저 티브이나 음악을 틀었다. 70년대 뮤직 비디오 같은 아프리카 가수의 노래이든 재즈 같은 연주곡이든 분위기가 전혀 맞지 않는 생뚱맞은 음악들이라 볼륨을 낮춰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손님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을 누릴 만큼 여유가 생겼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준비한 손길들이 고마웠다. 우리가 굶주리지 않고 날마다 잘 먹어서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를 알았다.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사진을 늘어놓고 보니 어려운 나라에서 참 잘 먹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어 덜 먹고사는 그곳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말라위 바이블 소사이어티에서 감사의 뜻으로 우리 팀에게 만찬을 베풀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우리 숙소 레스토랑에서. 젊은 회장님은 얼마 전 한국 총회를 다녀왔다고 했다. 마지막 식사는 홍콩 반점에서. 고향의 맛도 아닌데 코를 박고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