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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말라위, 사립 병원 진료비가 놀라워..

말라위 사람 사는 이야기 1..

by 몽기

말라위에서 몇 년간 선교사로 사셨던 지인분이 급하게 연락을 주셨다. 전 직장 동료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가야 하는데 치료비를 보낼 테니 함께 데려가 달라는 부탁이었다. 팀과 움직이던 일정이 끝나고 블렌타야 숙소로 돌아온 뒤 남편과 나는 그렇게 B를 만났다.

초등학교에서 정원과 건물 관리인으로 일했다던 그는 40대 후반 즈음으로 보였다. 언제부터인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올라 쉬는 시간이 길어졌고 가끔씩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주저앉다 보니 일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단다. 병가 따위의 복지 시스템은 없었다. 퇴사와 동시에 수입은 끊겼고 빠듯하던 살림에 병원을 찾을 엄두도 못 내던 차였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책임은 막중했지만 몸은 무너져 갔고 마음도 피폐해졌다.


병원(Mwaiwathu Private Hospital)은 숙소 맞은편 도로를 얼마간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외국인인 우리가 현지인의 보호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돈이었다. 그의 물주가 되어야 했다. 600,000콰챠 (말라위 화폐 단위, 지폐마다 가치가 적어 돈을 세는 것도 일이었다.)를 현찰로 환전해 가방 한가득 채워 병원에 들어섰다.

사립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깨끗했고 응급실이며 진료실이 나름 잘 갖춰져 있어 티브이에서 보던 아프리카의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병원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말라위 병원 중에서도 수준급에 속하는 시설이란다. 또 사립이란 의미는 외국의 종교, 구호 단체등에서 후원이 있다는 뜻으로 말라위 국공립 시설과 비교해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고 했다.) 그런 만큼 진료비는 상상을 초월했다.

일반의 예약을 위해 서무과에 들러 인적사항을 일일이 손으로 적고 진료비를 8만 원 낸다. 의사가 요구하는 몇 가지 검사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검사비는 추가로 따로 낸다. 가령 혈액검사실로 옮기면 그곳에서 다시 인적사항을 새로 적고 검사비 10만 원을 내 접수한 뒤 검사를 받으면 30분쯤 뒤 바로 결과가 나온다. 그 뒤로 엑스레이 검사를 받으러 옆방으로 가면 다시 같은 양식에 인적사항을 똑같이 적고 검사비 12만 원을 낸다. 사진을 찍고 30분쯤 기다리면 결과가 나온다. 그 검사 결과를 들고 옆방으로 옮겨 또다시 인적사항을 새롭게 적어 접수한 뒤 전문의의 소견을 들으려는데, 예약이 찼다며 다음 주에 오란다. 진료비 10만 원을 내고 예약을 잡은 뒤 병원을 나왔다. 한나절 시간을 보내며 몇 가지 검사를 받는데 4-50만 원의 돈이 훌쩍 나갔다. 아직 치료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검사를 기다리며 병원 복도에서 B와 나누었던 대화들은 이랬다. 말라위 법정 최저 임금은 월 10만 원이 채 안되는데, 이 마저도 서류상의 이야기일 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에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일을 한단다. 의사를 봄과 동시에 연봉의 반이 날아가니 누가 병원문을 열 수 있겠는가. 그런데 병원에 환자들이 꽤 있는 걸 보면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도 있기는 있나 보다.


(나중에 호주인 팀원들과 이 경험을 나누었더니 검사를 한 병원에서 신속하게 하고 결과가 빨리 나오는 효율적 시스템에 좀 놀라기도 한다. 호주 같은 경우는 일일이 다른 클리닉에 예약을 잡아 검사를 받아야 하고 또 며칠을 기다려서 결과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로 의료 서비스가 더 나빠졌다고 볼멘소리들을 한다.)

몸이 아파도 진단 한번 받기 어렵고, 약 한번 받아먹기 힘드니 건강하게 사는 것도 오래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말라위 평균 기대수명은 65세 정도이다. 이미 안전한 백신이 개발되어 주사 한방이면 해결될 문둥병이나 결핵등의 질병들도 여전히 퍼져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어둠 속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일찍이 시력이 약해져 돋보기 없이는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결막염 같은 사사로운 감염에도 손을 못써 평생을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간다. 그리 비싸지도 않은, 어느 나라에서는 남아도는 백신들이 왜 이 땅에 전달되지 않는 걸까?


트럼프는 빈국을 지원하던 예산을 대폭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고 그나마 수혜를 받던 아프리카의 일부 대상자들은 이미 타격을 받고 있다.

세상의 모든 지도자나 리더들이 과연 똑똑하고 지혜로운가? 정의롭고 도덕적이고 양심적인가? 같이 잘 살 의지가 있는 걸까? 꼭 미국이나 말라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지도자의 자질에 의심이 간다. 신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적당히 살아갈 만큼 충분한 물자를 공급하셨는데, 인간의 탐욕과 죄성으로 분배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온통 모순 투성이다.


진료를 마치고 나와 길 건너 쇼핑센터에 함께 갔다. 몇 시간째 붙어 앉아 별별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새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늦은 점심으로 도시락을 챙겨주려다가 필요한 식료품도 고르라고 권했다. 식용유, 설탕, 밀가루등을 몇 번씩이나 가격을 비교하며 신중하게 골랐다. 염치없는 줄 알지만 배고픈 가족들이 집에 있으니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눈빛을 반짝이고 고마워하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해하다가 흰 치아를 다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기뻐하는 그를 깊은 산속 어드매의 초라한 집 앞에 내려주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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