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발전하는가? 반복되는가?
말라위가 세계적 수준의 맛 좋은 차와 커피 생산국이란 것을 아는가?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았다. 우리가 이디오피아 커피를 지구촌 어디에서나 흔하게 마시는 것처럼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지형과 기후는 커피콩과 찻잎을 생산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란다.
말라위에서 여러 해 살았던 지인이 특정 브랜드의 홍차와 커피콩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수퍼에서 파는 평범한 가격의 커피콩이지만 풍미가 좋아 자꾸 생각이 난다는 거였다. 숙소 근처의 수퍼에 갔더니 찾던 홍차 박스는 수북이 쌓여 있는데 커피콩은 보이질 않았다. 점원에게 물어봐도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 다음에 다시 한번 와보자 생각했었다.
숙소에서 아침 식사 때 원두커피를 큰 주전자에 끓여줬는데 (어떤 날은 주고 어떤 날은 인스턴트커피만 내놓고 서비스가 들쭉날쭉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맛있어 비상용으로 집에서 챙겨 갔던 모코나 커피는 제쳐두고 주는 대로 받아 마시기도 했다.
팀원들도 선물로 사가려던 커피콩을 구하지 못했고 며칠 뒤 어느 카페 주인으로부터 이상한 설명을 듣게 됐다. 유럽 유수의 다국적 회사에서 커피콩을 대량 구매해 말라위 생산지 이름을 지우고 자기 이름을 붙여 세계에 파는 것이 보통의 시스템인데, 몇 년간의 가뭄으로 생산량이 줄자 수출 물량을 맞추느라 말라위 전국에서 커피콩이 아예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인스턴트 가루 커피만 팔았다.)
그리고 주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일부 고급 카페에서는 오히려 커피콩을 수입해서 원두커피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아... 그래서 들렀던 몇몇 카페들이 커피 전문점이라 해놓고는 막상 가보면 원두커피 없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던 건가..
일 년 내내 키우고 수확한 커피를 누군가에게 팔아넘기느라 정작 자신들은 마시지도 못한다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의 자본이 대규모 플란테이션 농장을 건설한 뒤, 헐값에 대량 생산하여 수확물만 들고 가는 것이었다. 말라위 노동자들은 뙤약볕 아래서 찻잎 하나하나 손으로 따고 일일이 커피콩알을 고르며 장시간 고된 노동을 낮은 임금을 받고 할 뿐.
커피 한 봉지 사려다 거대한 음모 같은 세계 경제 시스템과 역사가 떠올라 안타깝고 서글펐다. 커피콩을 키우지 않는 이탈리아는 커피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내세우고 카카오를 경작할 땅도 없는 스위스는 세계 초콜렛 생산 1위 국가로 이름이 높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목숨 걸고 땅속으로 수십 미터 구멍을 파고 내려가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내면 헐값에 사들이는 곳이 잘 알려진 세계의 명품 회사들이다. 쓸만하고 먹을 만한 좋은 것들은 다 뺏기고 사는 사람들, 이 빈곤한 대륙에서 자기에게 유익이 될만한 것들은 귀신같이 찾아내 챙겨가는 부자 나라의 사람들.
어느 날인가, 숙소 근처의 유서 깊은 교회 유적지를 찾아갔었다. St. Michael and All Angels Church. 1880년대에 세워진 말라위 최초의 유럽식 벽돌 건축물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들이 설계와 시공을 직접 했는데, 말라위 현지인들이 손수 벽돌을 구워 지으며 양국의 문화가 적절히 섞인 교회건물이 되었단다.
당시 노예 무역상들이 이 거리를 오가며 사람들을 끌고 가 신대륙에 내다 팔은 것을 참회하는 의미로 블렌타야 이 지점에 교회를 세웠단다. 노예상의 마차가 다니던 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힘없이 끌려가던 많은 이들의 통곡과 아픔이 있는 곳, 이들의 눈물은 과연 말라 있는가? 참회자들을 용서했는가? 아니 참회자들은 이들의 용서를 구하고 있는가? 아직도 유익을 챙겨가는 중인가?
역사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는가? 끝없이 반복하는가?
교회 주변엔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험공부를 하다가 우리 일행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밝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이들의 미래가 건강하고 힘차기를 소망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