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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12. 2021

호주, 가슴 벅찼던 '스팀 랠리' Steam Rally

200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아날로그의 세계.

증기엔진으로 움직이는 모든 기계류를 전시하는 행사(Steam Rally)가 지난 주말 이웃 마을 레이크 골드스미스(Lake Goldsmith)에서 열렸다. 근 50년 전통을 자랑하며 일 년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열린다는데 행사장이 집에서 가까워 아들 기차나 한번 태워줄까 하고 찾아가 봤다.       

기관사의 방

허허벌판에 차를 세우고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내가 상상하던 그 이상의 것들이 이곳에 있음을 감지했다. 동화인가, 꿈인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이동한 듯한 새로운 세상의 풍경에 입이 벌어졌다. 오래된 증기 기관차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아날로그 기계의 엔진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눈이 번쩍 띄었다. 

석탄을 태우는 화력 기차,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 기계
주변을 돌아보니 훌쩍 2-3백년을 거술러 올라간 듯 했다.
석탄을 태우는 난로와 그 위의 주전자 온갖 잡동사니와 공구들 호롱불.

크고 작은 증기차의 굴뚝에서 폴폴 솟아나는 연기들, 덜거덩 드륵드륵 천지사방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쇳기계 소리, 매캐한 기름 냄새, 눈앞의 모든 기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호흡하고 활동하고 있었다. 내 가슴이 기계의 박동에 맞춰 두근댔다. 칙칙 푹푹... 귀를 뚫는 요란한 증기 소리, 그 소음과 냄새 연기가 정말로 이상하게도 친밀하고 좋았다.

별별 바퀴와 탈 것들.

호주 사람들은 웬만한 일에 사진을 잘 안 찍는데 이날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는 물론이고 대형 비디오카메라까지 어깨에 메고 다녀 놀랐다. 이들에게도 확실히 이슈가 되는 랠리였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저녁 TV 뉴스를 보니 이 행사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다.

전동 휠, 나무를 자르는 기계
골동품 노점
그 시대의 편의점. 너무 작고 앙증맞은 가게인데 입구부터 내부까지 빈틈하나 없이 무언가로 빼곡하다.  

발 디딜 틈 없는 가게를 들락이며 꼬마들은 사탕을 사 먹고 어른들도 뭔지 모를 것들을 사들고 값을 치렀다. 

정말 이렇게 살았던 거구나...   

손뜨개질 스웨터, 아코디언, 턴테이블 ...목적은 모르겠지만 힘차게 움직이는 기계들.

가운데 쇼장이 이었다. 퍼레이드 시간이 오자 온갖 열차와 트랙터들이 행진을 했다. 진행자는 등장하는 기계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관리를 잘했는지 원래의 기동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꼼꼼히 설명을 해 주었다. 트랙터가 땅을 간다든지 하는 온갖 기능을 시연하기도 하고 기차나 같은 차종끼리 달리기 경주도 했다. 세상엔 이런 세계도 있구나.

카페 아줌마의 침실은 이랬다.  아침이면 저 대야에 물을 받아 세수를 했을게다. 오래된 주방의 낡은 오븐에 불을 지피고 빵을 굽는다. 나른한 오후엔 달큰한 홍차를 끓이고 휘핑크림과 딸기잼을 산처럼 올린 고소한 스콘을 팔았다. 우리도 한 접시 사서 한입 가득 베어 먹었다.    

이 화력 불도우저를 볼 때는 거의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집채만 한, 요즘 것들의 서너 배는 될만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불도우저였다. 철판을 엉성하게 붙여놓은 듯한 외관인데 잘 보면 두 명이 그 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앞에서 불도우저를 작동하고 또 한 사람은 뒤에서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던지며 불을 땐다. 

커다란 손을 하늘 높이 추켜올려 한상 가득 흙은 퍼담고는 허리를 180도 삐걱대면서도 훽 돌려 회전한 뒤 우르르 쏟아냈다. 우직하고 파워풀한 모습에 사람들은 몇 번씩 박수를 치고 환호를 올렸다. '그래, 장하구나. 멋있어. 해낸 거야.' 사람들은 넋을 빼고 불도우저를 경외하듯 바라본다. 예술 작품을 품평하듯 움직임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차오른다.

삼륜트럭, 트레일러. 우유를 버터로 만들어 파는 가게. 당시의 옷을 입고 옛 방식대로 만든다.

너무 예쁘고 독특한 클래식 카들. 알고 보면 돈 잡아먹는 자동차다. 이 차 주인들은 차고에 이들을 모시고 맨날 기름칠하고 고장 나면 부품을 구하러 다니거나 아예 직접 만들어 조이고 닦고 기름칠하며 애인처럼 옆에 두고 시간을 보낸다.

클래식 캠핑카.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뒤쪽엔 앙증맞은 주방이 앞쪽엔 아담한 침실이 있다. 주방 앞에 식탁을 펼치고 앉아 소꿉장난하고 싶다. 이곳에서 주말을 보내는 참가자들과 구경꾼들이 직접 캠핑도 하면서 적나라하게 차 내부를 공개했다.

놀라웠던 건 이곳의 모든 기계들이 개인 소장이라는 거였다. 이들은 이곳 창고에 초대형 기차나 기계를 모셔놓고 장난감처럼 만지작대며 아이처럼 꿈꾸고 논다. 그저 자기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러다 이런 랠리가 열리면 먼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묵은 먼지도 털고 기름칠도 하고 시연도 하며 주말을 보낸다. 돈 되지 않는 일에 돈을 쏟아붓는 사람들의 열정은 실로 존경할 만하다.

트랙터 퍼레이드
나무를 태워 움직이는 낡은 기차를 얻어타고 한바퀴 돌았다. 행사장은 걸어서 다보기 힘들 정도로 광대했다.
이런 낡은 차들도 있었다. 삼륜차. 나무로 만든 이상한 짐차. 고철 덩어리지만 분명히 움직이는 녹슨 차.
쌀부대로 의자를 덮어씌운 차. 이들의 포인트는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다.


이곳은 거대한 박물관 그 이상이었다. 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생동감 현재 진행 중인 삶이 이곳에 있었다.

난 기계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인데 왠지 모를 아날로그적 감성이 나를 자극해서인지 모든 기계가 따뜻하게 다가왔고 의미 있는 감정 교류를 했다. 새로 페인트 칠을 하고 전시장 한구석에서 오만하게 자리를 지키며 '날 좀 보라고! 이래 봬도 왕년에 한가닥 했다니깐. 니들이 나를 알아?' 하는 게 아니었다. 천장이 내려앉아도 문짝이 떨어져 나가도 나사를 조이고 기름을 발라가며, 과거의 영화에 침잠하지 않고 과거보다 못한 현실에서도 최선을 대해 사는 모습이랄까. 

기계화 산업화로 이루어낸 혁명이 생각났다.  2-3백 년 전에 이들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놀라고 믿지 못하며 환호하고 감탄을 했을게다. 그에 못지않은 환호와 감탄을 오늘, 그들에게 다시 던져 주고 싶었다. 이곳에 모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심정이 하루를 즐겼을 듯하다. (2010/05/0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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