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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18. 2021

이색 스포츠 '크로키'-월드랭킹 1위를 만나다.

유럽 귀족들의 사교 스포츠

크로키(Croquet)를 아는가? 호주 스킵튼에 와서 처음으로 접해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크로키란 스포츠였다.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4개의 각기 다른 색상의 나무공을 나무망치(mallet)로 쳐서 6개 혹은 그 이상의 관문을 통과시키는 게임. 하나의 공을 쳐서 다른 공을 움직이게 하는 것, 어떤 공은 치되 어떤 공은 닿으면 안 되는 등 당구와 유사한 점도 많다. 관문 앞에서는 상대의 공을 쳐내는 공격을 맹렬하게 하기도 하고 자신의 공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공을 중간에 밀어넣기도 하고, 세세한 여러가지 룰이 있다. 매우 점쟎고 정적인 게임인데 한 게임 치고 나면 온 몸이 기분좋게 풀려있는 스포츠다. 공은 보기보다 가볍고 채는 보기보다 무겁다.^^     

옆 마을 리스모에 사는 16살 소년 로버트 플렉쳐는 시골에서 목장일을 하시는 부모 슬하에서 4형제의 둘째로 태어나 성장했다. 마을 인구가 350명쯤 되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이 오지 마을에서 4형제는 뚜렷한 교육 주관을 가지고 계신 부모덕에 학교 문턱도 넘어본 적 없이 홈스쿨링으로 세상을 배워가고 있었다. 지난해인가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맏형에게 학업을 마치면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대답은 ‘염소젖을 짜서 치즈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다. 어린 소년이 매우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는 것도 놀랐고 치즈 메이커가 되고 싶다는 사람을 처음 봐서 좀 새롭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이 소년이 아직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해서 너무 제한된 꿈만 꾸는 건 아닌가 염려하는 마음을 살짝 들기도 했었다.        

이 형제들은 집에서 교과서 등을 가지고 스스로 공부를 하다가 (한국 사람들이 보면 기겁을 할 정도로 이들은 자유롭게 ‘느리게’ 배운다.) 가끔씩 마을 한 모퉁이에 있는 크로키 클럽에 나와 몸을 풀곤 했다. 크로키는 한때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상류층들이 사교를 위해 치는 게임이었단다. (프린세스 다이어리 2를 보면 궁전 안에서 귀족들이 크로키를 치는 모습이 빠른 장면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의 명성과는 달리 지금은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조용히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정도인 듯하다.

호주에서도 크로키는 거의 사양 스포츠로 노인들이나 시골 언저리 등에서 동호인들을 찾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이 소년들이 이 조용한 마을의 다 쓰러져가는 시골 크로키 클럽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슬슬 재미를 붙여나갔다. 아버지는 동네 할아버지를 코치로 찾아 붙이고 ‘나름’ 열성적으로 이들을 후원했다. 지난해부터 인가 이들은 호주 국내 선수권 대회에 출전을 시작했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 지역신문의 한쪽 구석을 장식하곤 했다. 이들의 실력은 뛰어났고 특히 둘째 로버트의 성적은 눈부셨다. 호주 국가 대표급이 된 로버트는 올해부터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 몇 달 전 뉴질랜드 대회를 시작으로 해서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에서 있었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그는 세계 3위에 랭크(호주 랭킹 1위)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쟁쟁하고 노련한 경쟁자들을 물리친 결과였다. 다음 달엔 이집트로 그리고 그 뒤엔 다시 런던에서 대회를 치를 계획이란다. 말하자면, 골프계에 신동 ‘타이거 우즈’가 있었다면 크로키계엔 지금 이 소년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인기 스포츠는 아닌지라 대중적인 관심을 끌며 부와 명성을 휩쓰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말이다.   

바로 이 소년이 월드 랭킹 3위. 공을 다루는 기술이 신묘하다3

이 조용했던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일 년에도 몇 번씩 해외 원정 경기에 나서며 짐을 풀었다 꾸렸다 해야 하는 프로 스포츠인(스폰서는 별로 없지만..)의 대열에 들어서게 됐다. 난 개인적으로, 한 번씩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카레라이스나 짜장밥을 해주면 말없이 두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던 수줍음 많고 조용한 소년이 세계 랭킹 3위라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이번 주엔 밥 먹으러 오면 좀 더 맛있는 것을 해주어야겠다. ^^   

또 자녀에게 무엇을 시킬 욕심이 있거든, 남들 안 하는 것을 시켜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들의 실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수층이 워낙 얇아 두각을 빨리 나타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이 촌 소년들이 크로키라는 사사로운 스포츠를 통해 세상을 열고 나가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배우고 느끼며 성장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이웃으로서 참으로 가슴이 뿌듯해졌다.  


(2009/06/10 씀- 이 글을 썼을 당시 그는 세계 랭킹 3위였는데, 이듬해 세계를 제패했고 몇 년간 챔피언의 자리를 지켰다. 당시 호주 언론에서도 시골 소년이 혼자 그것도 사양 스포츠에 도전해서 세계 챔피언이 된 것을 흥미롭게 다루었었다. 한동안 그의 다른 두 형제도 세계 랭킹 10위 권을 오르내렸다. 내게는 평범했던 이웃 소년들의 영화같은 도전과 성장이 그저 새롭고 놀라을 따름이었다.)

이 아이는 지금 그냥 노는 중..^^ 공은 인간이 개발한 가장 뛰어난 완구임에 틀림없다.
시골 할머니들이 크로키 게임을 즐기고 있다.
Bing Image

   

넷플렉스 인기 시리즈 브리저튼 속의 크로키 게임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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