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인이 되어도 아들은 등을 밀어준다고 했다
"아빠는 좋은 아빠니까."
장인어른과 목욕탕에 갔다. 아들을 데리고. 나는 이태리타월에 바디샤워를 묻혀 아들에게 쥐어주었다. "투입!"
열심 열심. 효과는 거의 없지만 할아버지는 시원하다며 탄성을 연발한다. 딸 밖에 없는 그에게는 피붙이가 등을 밀어주는 경험은 어린 시절 이후로는 손에 꼽는 일이리라.
그런 의미에서는 사위가 등 밀어주는 것보다 손주가 고사리손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훗. 결혼 10년 차 짬밥은 괜히 먹은 게 아니다. 10년 차부터는 눈치와 인내. 적당한 포커페이스와 연기력은 필수다. 역시 정치는 40대 이후에 입문하는 걸로. PEACE.
아들은 얼마 전부터 여탕 출입 금지를 당했다. 사우나에서 같이 놀 똘마니(?)가 필요한 누나에게는 BAD뉴스, 아빠를 독차지할 아들에게는 GOOD뉴스다.
오늘은 내가 사우나를 전세 냈다. 마 아빠가 이런 사람이야 마. 라고 으스대고 싶지만 코로나라 사람이 없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됐다. 점점 아들을 속이기가 쉽지 않다. 사는 낙이 하나 줄었다.
이제 슬슬 품에 쏙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어진 아들을 씻긴 후, 내 등도 내어 맡기며 묻는다. 열심 열심. 어설픈데 열심히 하는 게 귀여워서 별 세척 효과가 없는데도 자꾸 시킨다.
"○○이는 아빠가 할아버지 돼도 등 밀어줄 거야?"
"당연하지."
이상하게 아들은 가끔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 던지는 말로 심쿵하게 할 때가 있다.
"아빠는 좋은 아빠니까."
때로는 뭘 모르는 사람이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뭘 모르는 아이가 한 말로 힘이 나기도 한다.
나도 내가 객관적이지 않음을 안다. 그치만 뭐. 그냥 지금 좋으면 됐지. 아들아 크윽. 이 맛에 산다. 크흡. 뚱땡이 빠나나 우유나 때리러 가즈아.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들은 누나랑 투닥거리다가 엄마에게 혼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엄마는 쪼금만 무섭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라고 했다.
이런 박쥐 같은. 니 사회생활 어서 배왔노? 인생 2회 차 아이가?
귀여우니까 봐준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