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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Sep 16. 2021

내가 노인이 되어도 아들은 등을 밀어준다고 했다

"아빠는 좋은 아빠니까."

  장인어른과 목욕탕에 갔다. 아들을 데리고. 나는 이태리타월에 바디샤워를 묻혀 아들에게 쥐어주었다. "투입!"


  열심 열심. 효과는 거의 없지만 할아버지는 시원하다며 탄성을 연발한다. 딸 밖에 없는 그에게는 피붙이가 등을 밀어주는 경험은 어린 시절 이후로는 손에 꼽는 일이리라.


  그런 의미에서는 사위가 등 밀어주는 것보다 손주가 고사리손으로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훗. 결혼 10년 차 짬밥은 괜히 먹은 게 아니다. 10년 차부터는 눈치와 인내. 적당한 포커페이스와 연기력은 필수다. 역시 정치는 40대 이후에 입문하는 걸로. PEACE.


  아들은 얼마 전부터 여탕 출입 금지를 당했다. 사우나에서 같이 놀 똘마니(?)가 필요한 누나에게는 BAD뉴스, 아빠를 독차지할 아들에게는 GOOD뉴스다.


  오늘은 내가 사우나를 전세 냈다. 마 아빠가 이런 사람이야 마. 라고 으스대고 싶지만 코로나라 사람이 없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됐다. 점점 아들을 속이기가 쉽지 않다. 사는 낙이 하나 줄었다.


  이제 슬슬 품에 쏙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어진 아들을 씻긴 후, 내 등도 내어 맡기며 묻는다. 열심 열심. 어설픈데 열심히 하는 게 귀여워서 별 세척 효과가 없는데도 자꾸 시킨다.


  "○○이는 아빠가 할아버지 돼도 등 밀어줄 거야?"

  "당연하지."


  이상하게 아들은 가끔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 던지는 말로 심쿵하게 할 때가 있다.


  "아빠는 좋은 아빠니까."


  때로는 뭘 모르는 사람이 생각 없이 뱉은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뭘 모르는 아이가 한 말로 힘이 나기도 한다.  


  나도 내가 객관적이지 않음을 안다. 그치만 뭐. 그냥 지금 좋으면 됐지. 아들아 크윽. 이 맛에 산다. 크흡. 뚱땡이 빠나나 우유나 때리러 가즈아.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들은 누나랑 투닥거리다가 엄마에게 혼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엄마는 쪼금만 무섭고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라고 했다.


  이런 박쥐 같은. 니 사회생활 어서 배왔노? 인생 2회 차 아이가?


  귀여우니까 봐준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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