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르미 Sep 21. 2021

정도전이 나라를 망쳤다

추석에 나만 힘든가? 왜 아무도 힘들다고 안 하지?

  수영장에서 만난 형님은 "정도전이 나라를 망쳤다."라고 했다. 어느 정도 동의한다. 유교는 정형화된 효부와 현모양처의 기준을 정했고, 죽은 조상을 섬기는 도리를 정했다. 어린 시절, 그게 사실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냥 매년 하던 거니까 제사상에 절을 했다. 여자들은 음식하고 남자들은 고스톱 치는 명절을 당연한 줄 알고 자라왔다.


  명절 당일에는 아침을 최소 5번 넘게 먹었다. 먹다 보면 점심이 되었다. 할아버지 형제들 차례를 다 모셔야 했고, 가는 집마다 꼭 앉아서 밥을 먹었다. 큰 당숙 어른이 아무도 모르게 종중 땅을 꿀꺽하신 다음에야 그게 없어졌다. 당숙 어른은 곧 돌아가셨고 그 집안과 나머지 모든 형제들 가문의 관계는 끊어졌다. 소송을 해서야 겨우 할아버지 할머니 묘가 있는 땅만 찾아올 수 있었다.


  조금 머리가 굵고 결혼이라는 것도 해 보니, 어려서 제사 끝나자마자 약과와 수박 젤리 집어 먹던 때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제사 지낼 때는 빨랫줄도 걷고 문도 열어 놓는다. 아니 진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와서 잡수시면 억울하지나 않겠는데 무슨 빨랫줄도 못 넘고 문도 못 여는 귀신이 와서 처먹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명절에 제사를 잘 모시면 효자 효부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살아계실 때 사랑하는 게 정상이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딱 할 만큼, 할 도리만 한다. 살아계실 때 이 핑계 저 핑계로 사랑하지 못하고(않고) 돌아가신 다음 도리를 지킨다. 살아계신 부모를 모시고 사랑하는 것의 복잡성에 비하면 그냥 고된 상차림이 마음이라도 더 편하기 때문일까?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속죄하기 위해 제사를 더 열심히 모신다. 그러나 속죄가 될 리 없다. 그냥 살아계실 때 전화라도 한번 더 드리는 게 낫다. 고인의 뜻과는 상관 없이 그냥 집안의 군기 잡는(?) 용도로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 할렐루야다.


  솔직히 나는 막말로 내가 죽어서 제삿상다리 뿌러지게 차려 놔도 먹으러 안 간다. 귀신이 먹어 봤자 얼마나 배가 부를 것이며, 애들 마음 고생 몸 고생하는 거 보기 싫어서 어떻게든 차리지 말라고 할 것 같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어떻게든 메시지를 전하고 말테다. 딸아 며느라 아버지는 고기 산적 필요 없으니 너나 고기 사먹고 건강해라.


  행복한 가정, 괜찮은 집안의 체면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잘 못한다. 명절에 이런저런 일로 힘들었다는 얘기를 비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 일쑤다. 일만 힘든가? 켜켜이 쌓인 관계의 구조적 문제들과 과거의 상처들. 마음이 더 힘들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차린 밥상에 피눈물이 흐른다. 산해진미를 차려 놓았지만 맛은 모래알을 씹는 것 같다. 차리는 사람은 마음에 배긴 굳은살로 견디고, 먹는 사람은 고마운 줄도 모르고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아. 세뱃돈 받아서 폭죽 놀이로 탕진하던 시절이 행복했다. 아아.


  모두 눈치를 본다. 부모는 자식 눈치. 자식은 부모 눈치. 형제자매 시누이 동서 눈치. 아내는 남편 눈치. 남편은 아내 눈치. "이번엔 그냥 넘어가시죠?"나 "얘 이번엔 그냥 사 먹자." 한 마디를 서로 못한다. 이렇게나 저렇게나 말 한마디 잘못하면 분위기는 얼음장이다.


  때로는 차라리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지옥이 더 낫지 싶을 때도 있다. 명절아 사라져라. 얍. 차례상도 아침상도 결국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인데 도대체 왜 이러한가. 가족을 위해서라면, 사랑하기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고 또 해 왔던 위대한 용사들이 왜 명절만 되면 PTSD환자처럼 몸과 마음이 아파오는가.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억울한 사람은 많다. 때린 사람은 없고 맞은 사람만 많다. 섭섭하게 한 사람은 없는데 섭섭한 사람은 많다. 물론 모든 가정이 다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안다. 내 생각이 다 맞지 않다는 것도 안다. 다 알면서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효도하기 위해 묵묵히 감내해 오신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렇지만 이런 얘기는 불편해서 아무도 안 하니까 그냥 나라도 한번 써 본다. 명절에 좋아하는 글도 못 쓰고 복잡한 감정을 추슬러야 하는 브친님들께 상처가 아니라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코로나로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큰가. 코로나 덕분에 만나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이 큰가. 아아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코로나 이후에도 명절에는 그냥 즐거운 여행을 하든지, 그냥 당일에 영업하는 식당 알아 놓았다가 가서 사 먹든지 하자. 


  아아. 그날이 오며는. 내가 가족의 우두머리(?)가 되는 날이 온다며는. 


  아무도 정하지 않았지만 모두 따르고 있는 명절의 율법과 굴레부터 없애버리리라. 내 마누라와 딸과 아들, 장차 만날 며느리와 사위, 우리 온 가족의 사랑과 평화를 위하여. 내가 바닷가에 호텔 잡고 다 불러서 추석날 아침은 우아하게 다같이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리라. 깊어가는 가을에 따뜻한 온수풀에서 손주손녀들과 수영을 하리라. 하루 종일 애들은 봐줄테니 너희들은 영화라도 보고 오렴. 아아. 그날이 오며는.

작가의 이전글 내가 노인이 되어도 아들은 등을 밀어준다고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