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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Mar 09. 2022

남편들이 게임 방송을 보는 이유

놀 기운도 없지만 우리에겐 늘 친구가 필요하다.

  그 옛날 오락실이라는 모임 공간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게임을 하려고 온 자와 구경하러 온 자. 남자들의 잡기가 대부분 그러하듯 게임도 약간은 돈X랄(?)인 면이 있습니다. 자금력과 실력이 대체로 비례한다는 뜻입니다.


  세월이 흘러 뒤에서 구경하던 코흘리개들은 구매력을 보유한 키덜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열심히 게임 세계에 매진합니다.


  그러나 이내 깨닫습니다. 자금력만 좀 나아졌을 뿐, 시간이 없습니다. 결혼 후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남편이 숨겨둔 고가의 게임기에 샤워기로 시원하게 물세례를 베푸는 마느님의 (독기와) 패기. 예전 어느 드라마에 나왔던 유명한 장면은 게임하는 남편의 가정 내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혹 건전한 취미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다시 깨닫습니다. 게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프로게이머가 될만한 재능은 없습니다. 어린 시절 공략집을 보고 공부하던 열정도 이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서글프지만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갑니다. 그 시절 오락실 게임기 앞에서 구경하던 어린이로.


  너튜브에는 게임을 대신해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놀 기운도 없고, 때로는 손 움직이는 것도 귀찮은 날 대신해서 해보고 싶은 게임을 해주는데, 심지어 잘하기까지 합니다. 말도 얼마나 기가 막히게 하는지, 진짜 옛 친구가 나랑 게임하며 놀아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줍게 댓글도 달아보고, 고마운 마음에 1000원, 5000원, 후달리지만 어떤 날은 10000원. 진심을 담아 후원금을 전달합니다. 자금력은 있다니까요. 그때보다는.


  어린이들이 너튜브에서 캐리 언니, 지니 언니를 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완성도 있는 애니메이션을 볼 것이지 왜 저런 영양가 없는 영상을 보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부모 대신 아기 목소리를 내면서 친구처럼 놀아주는 캐리 언니가 거의 연예인을 넘어선 위인급입니다.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종류별로 갖고 놀아주니, 갓캐리 언니 만만세입니다.


  그래요. 사실 헛헛해서 게임 방송 보는 거예요. 남편은 재밌어서 스트레스 풀려고 본다고 하겠지만, 자기도 몰라요 자기가 외로운 줄. 그렇게 아저씨가 되어갑니다. 내버려 두면 그런 노인이 되겠죠. 어른은 됐지만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발전시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자기감정을 표현하는지 많이 배우지 못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늘 컴퓨터나 게임기, TV 앞에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점점 더 외로워졌어요.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질리고, 돈 없다고 무시당하고, 능력 없다고 까이고. 지치고 지쳐 산에라도 들어가고 싶은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내일도 출근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 대신 산에 들어가 준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래요. 사실 이 글은 게임에 대한 글도 아니고, 남편에 대한 글만도 아니에요. 우리 모두 헛헛하고 외로워요. 우리 아이들도 그래요. 그래서 친구가 필요해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서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줘도 괜찮아요.

  

  오늘도 조금 더 따뜻할께요.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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