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저항들 - 다섯번째 이야기: 20대 이야기

내가 뭘 모르고 있나?

by moonterry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메타인지란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시점은 20대 후반이었다. 당시 고영성 작가와 신영준 박사가 쓴 ‘완벽한 공부법’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접했다. 책에서는 '모르는 것을 알수록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아는 인지적 능력'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사실 이 단어에 그리 감흥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다 알아! 누구도 나한테 알려줄 필요도 없어!’라고 오만함이 있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내가 모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두려움’도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모르는 부분이 생겨나면 이 오만함과 두려움을 누구 앞에서 드러내지 않았고, 남몰래 정보를 모으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20대를 돌이켜보면 이해도가 매우 높아진 영역과 여전히 이해도가 떨어지는 영역들이 극명하게 나뉜다. 피아노 테크닉, 글쓰기, 공부, 시간 쓰는 방법, 자기계발 등에 있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했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은 반면 돈, 이성과의 관계, 세계 트렌드 읽기, 경제, 전공 공부 등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해도가 높은 영역은 저절로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하는 반면, 이해도가 낮은 영역은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꽤 되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궁금했는데, 한 영상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Studycode에서 ‘메타인지’에 관한 영상 덕분이다. 영상에서는 메타인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준점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얼 모르는가, 아는가를 선별하는 것이 메타인지를 키우는 핵심 요소가 되는데, 만일 기준점이 없으면 모호함에 사로잡힌다고 한다. 역으로 기준이 명확할수록 정확히 아는지 모르는지 구별이 가능함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되돌아보면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영역은 대체로 '기준점'이 명확하게 세워져 있었던 편이다. 글쓰기를 할 때 초기에는 하루에 한 문장씩 쓰는 것에서 시작하고, 30일 정도 지나면서 익숙해지면 한 문단을 쓰는 것을 도전하고, 대략 3개월 정도 지나면 2문단, 한 꼭지를 쓰는 과정에 대한 기준점이 명확하게 있어서 그대로 따라가면 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떠오르는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기준점이 없었던 영역에서는 아무리 배움을 꾀해도 소용이 없었다. 쌓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안다’고 자만심을 가졌으니, 스스로 메타인지를 키울 기회를 앗아간 셈이다.


참 안타까운 대표적인 부분이 전공 분야에 대한 공부다. 이 자리를 빌어서 잠시 얘기하자면, 전공을 화학생명공학과를 나왔다. 여기서 4년 간 전공 공부를 제대로 한 다음 심화 지식을 쌓아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 피아노에 미쳤던 나로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충 공부했다.


물론 모든 영역을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관심 있던 과목도 있었고, 내심 잘 하고 싶은 과목도 있어서 욕심을 내서 공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 메타인지에 대해 잘 몰랐던 나로서는 ‘전공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아무리 공부를 한다고 해도 무작정 내용을 외우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달달 외워서 시험에서 똑같이 적용했던 게 전부였다. 그 결과는 당연히 머리 속에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시간/돈 낭비를 하는 것이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배움에 있어서 최고 효율을 내려면 결국에는 기본기를 쌓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기본적인 개념부터 차근차근히 이해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기본적인 개념이 메타 인지를 발휘하게 해줄 기준점이 된다는 것을 한참 지나고 난 뒤에야 알았다)


하지만 그리 공부할 경우에는 학교 진도를 따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혼자서 기준점을 세워서 공부하기에는 너무 벅찼고 결국 포기했다. 그 대가로 대학원에서 적응을 못하고 나락에 떨어졌다. 만일 메타 인지에 대해서 알고 접근했으면 효율적으로 공부를 매우 잘 했을 텐데 안타깝다. (그래도 아마 전공 공부보다 피아노에 더 미쳐서 공부했을 것이지만 말이다)


당시 20대의 상황에서 누군가 (고인들도 포함)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나서서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을 것이다. ‘네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니라!’라고 조언을 해줬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모든 것을 다 알아!'란 자만에 빠지지 말라고 얘기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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