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9시 무렵, 퇴근할 때의 일이다. 막 사무실 문을 열고 퇴근하는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직원은 짐짓 멀쩡한 척했지만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 나를 보더니 유치원아이들처럼 배꼽인사를 한다. 나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그 직원이 조직이라는 획일화된 사회로 인하여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 직원이 뜬금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저기 박물관에 불이 켜져 있지 않습니까.
- 네, 근데 불이 켜져 있으면 안 되나요?
- 안됩니다. 큰 일 납니다.
- 왜 안되지요?
- 지난번 아시지 않습니까. 누가 화장실에서 밤에 고양이를 목욕시켜서 하수구가 막혔던 일이요. 그래서 안 됩니다.
- 직원이 야근을 하기 위해서 사무실에 불을 켰는데 안 될 일이 있나요?
- 그러면 저희도 밤새도록 사무실 불을 켜놔도 됩니까?
- 당연히 야근을 하면 사무실 불을 켜야지요. 불을 끄고 야근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까.
술이 취해 횡설수설하고 있는 그 직원에게 나는 덤덤한 어조로 조목조목 대답을 해주고 승용차에 올라타려는데 '안녕히 가십시오' 하면서 비틀거리면서 그는 또다시 내게 배꼽인사를 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하니 하찮은 일에 마치 큰 사건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 아침에 옆 사무실에 가서 나는 어제의 일을 우수개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록도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것은 나를 침몰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술에 취한 직원의 담당업무가 한센인 화장장이었다. 한센인이 사망하면 화장을 하는데 그 시체를 태우는 일을 그 직원이 하고 있었다.
한센인은 세 번 죽는다는 말이 있었다. 한센병에 걸려서 한번 죽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시체 해부를 당해서 다시 한번 죽고 마지막으로 화장터에서 화장을 당해 죽는다. 시체를 태우기 위해 화장장 기계를 돌리다 보면 이따금씩 긴 쇠꼬챙이를 이용하여 잘 안 타는 시체 부위를 뒤집어주기도 하고 또 화염 쪽으로 시체를 옮겨주어야 한다. 화장터에서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서도 복귀하면 온몸에서 시체 타는 냄새가 훅 끼쳐 온다고 했다. 집에 가면 아내도 그 냄새가 싫다고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고 했다.
그 직원은 시체 타는 냄새를 지우기 위해 빈술병처럼 뒹굴고 괴로워했던 것일까. 시체를 태우는 날이 있을 때마다 온몸의 표피에 술이 전이되도록 술을 마신다고 했다. 어제도 화장장이 있는 날이었다. 그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화장장 일을 혼자 몇 년째 묵묵히 처리하고 있었다.
문득 내년에 정년 퇴직하는 그 직원한테, 술이 취했다는 이유로, 혹은 조금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정작 내가 너무 되알지게 쏘아붙인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했다. 웃으면서 내가 '아, 네네, 그러시군요'하고 맞장구를 쳐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의 말을 너무 일방적으로 응축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돌연 마음이 숙연해진다.
불현듯 작년 말이 생각난다. 인사발령받아서 온 지 달포가 지났을 무렵이었고 몹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누군가 우리 관사 대문을 노크하고 있었다. 나가보니 바로 그 직원이었다. 손에는 작은 꽈배기 상자가 들려 있었다. 녹동항에서 줄을 서야 살 수 있다는 못난이 꽈배기였다. 그 직원은 식기 전에 드시라면서 내게 건네주고는 어둠 속을 휘적휘적 걸어갔다.
다시 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면, 이제는 내가 꽈배기를 사가지고 그 직원이 사는 집에 가서 '따스하게 먹으라고' 그 직원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 직원한테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