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여울 Mar 13. 2024

햄버거 속 피클, 씹을까 말까

나만의 작은 고민


가끔 햄버거가 엄청 당기는 날이 있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일을 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거킹에 들렀다. 주문을 하려고 키오스크 앞에 섰다. 테이크 아웃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매장 식사 버튼을 눌렀다. 배 파 빨리 먹고 싶었다. 창가에 앉아 비 오는 저녁 풍경을 보며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와퍼 업그레이드 세트를 주문한 후 번호표를 들고 카운터 앞에서 서성였다. 잠시 후 주방에서 조리하시는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를 틈타 얼른 “저기요, 3504번 햄버거에는 피클 좀 빼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조리사분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 이번에는 피클 없는 햄버거를 먹겠구나. 다행이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가리는 음식이 없지만 딱 하나 정말 싫어하는 게 오이피클이다. 한번 피클이 씹히면 눈가에 눈물이 절로 고일만큼 몸서리가 쳐진다.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문 상태에서 더 이상 씹지도 못하고서 혀의 감각을 사용해 피클 조각을 찾아 뱉어낸다. 햄버거를 집에 포장해 와서 먹을 때는 먼저 속재료를 모두 파 헤쳐서 젓가락으로 피클을 빼내고 먹지만 매장에서 먹을 때는 손으로 직접 빼내어 먹어야 한다. 매장 내 일회용 숟가락이나 포크, 빨대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속재료를 만지기가 꺼려진다.


내 손을 거치지 않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 조리사분께 피클을 빼 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는 곳이 많고, 키오스크로 주문할 때는 특별 요청 사항을 입력할 수가 없다. 내가 사는 동네 버거킹에는 주로 카운터에 직원이 없다. 테이블을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만 있는 편이다. 주방과 고객을 연결하는 직원이 없으니 주문을 한 후 카운터에 서 있다가 조리사분에게 직접 부탁하는 수밖에 다. 사실 피클을 빼달라고 부탁 내 요청 사항이 제대로 반영된 적이 많지 않았다. 밀려드는 주문 탓인 것 같았다. 바쁘신데 따로 부탁하는 것이 미안하고 눈치가 보 매장이 좀 한가할 때만 부탁드린다.


잠시 후 "띵동"하는 차임벨 소리와 함께 전광판에 내 주문번호가 나왔다. 햄버거 세트를 가져와서 자리에 앉았다. 냉방이 세서 창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비가 와서 평소보다 온도가 낮게 느껴졌는데, 얼음이 잔뜩 든 콜라를 한 모금 마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햄버거 포장지를 반쯤 벗겨 입을 크게 벌려 한 입을 베어 물었다. 피클이 씹히지 않으니 정말 좋았다. 배가 고파서 우걱우걱 씹어 먹었다. 또 한 입을 크게 베어 먹어 봐도 피클이 없었다.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의심 없이 또 한 번 크게 베어 물었다. 그 순간 느낌이 안 좋았다. ‘아, 이 맛은 으으윽…’ 그 강렬한 맛에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햄버거빵을 열어 속재료를 살펴보니 피클이 아래에 다 깔려 있었다. ‘아니, 피클을 빼고 토핑을 넣어 준다고 했는데…’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티슈로 손을 대충 닦은 후 손으로 하나씩 다 뺐다.


남편이나 아이들과 햄버거를 먹을 때 어쩌다 골라내지 못한 피클이 있으면 먹다가 휴지로 입을 가리고 조심스레 뱉어낸다. 언젠가 아이들이 내게 “알고 보니 우리 엄마가 편식쟁이네.”라고 말하며 깔깔 웃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편식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작 나는 일일이 피클을 빼내고 있었으니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웠다. 꾹 참고 씹어 넘겨볼까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나는 왜 이렇게 오이피클이 몸서리치게 싫은지 모르겠다. 시큼한 오이피클도 싫은데 케첩까지 섞여 있으면 도저히 씹을 수가 없다. 분명 나 이외에도 오이피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보았다. 오이피클보다는 생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페이스북에는 생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있었다. 생오이를 싫어하는 주된 이유가 냄새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생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오이피클은 잘 먹는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와 반대다. 생오이는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 먹는다. 냉면이나 비빔국수에 올린 오이채. 아삭한 오이무침, 오이소박이, 쌈장에 찍어 먹는 생오이까지 다 잘 먹을 수 있다. 오이 냄새도 싫지 않다. 하지만 오이피클은 냄새만 맡아도 코가 찡그려진다.


특정 식재료를 싫어하는 것, 잘 먹지 못하는 것이 불편하다. 예민한 미각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오이피클의 아삭하게 씹히는 식감, 느끼한 속을 달래주는 상큼한 맛을 체험해 보고 싶다. 햄버거에 오이피클이 맛을 더한다는 걸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다. 예전에 비누맛이 느껴져 잘 못 먹었던 고수를 이제는 잘 먹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오이피클에 대한 내 반감도 조금씩 사라지면 좋겠다. 현재의 불편함이 단순한 편식이 아닌 더 넓은 감각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면 정말 좋겠다. 몸서리가 쳐지도록 싫은 오이피클의 맛이 즐거운 맛으로 느껴지는 날이 이번 생에 오긴 올까.

작가의 이전글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새해 인사를 전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