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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여울 May 11. 2023

싱가포르에서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면

싱가포르 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문화, 한국 사람들


나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내 국적을 물어볼 때 기분이 좋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호의를 보인다. 사실,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많다. 어딘가 모르게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내가 구사하는 영어도 다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영국식 영어에 중국어나 말레이어 억양이 섞인 싱글리쉬를 많이 쓰지만 나는 미국식 영어에 가까운 말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우연히 한국말로 인사를 나눌 때가 있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직원들이 멤버십 카드에 적힌 내 이름을 보고 한국 사람인지 물어볼 때가 있다. 그들은 한국말을 조금 배웠다며 내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머쓱한 웃음을 짓는다.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이야기할 때도 그렇다. 영어 억양이 달라서 내가 싱가포르 사람이 아닌 걸 금방 눈치챈다. 그러면 한국 사람인지 물어보고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시는 분들이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있고, 직장인들도 많다. 비록 국말을 잘하지 못해도 한국 여행이나 한국 음식, 한국 드라마 등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한국에 가 봤어요!”, “이번 휴가에 한국에 여행을 갈 거예요!

한국은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이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0년 10월,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 신문이 온라인으로 실시한 투표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다. 격리가 면제되는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 협정이 체결될 경우 싱가포르 사람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나라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40.7%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그다음으로 일본이 17.7% 득표율로 2위를 차지했다(출처: South Korea is top country Singaporeans want to have Air Travel Bubble with: Poll by Ng Wei Kai, 12th Nov 2020, The Straits Times).


내 주위에는 한국 여행을 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많. 자신들이 경험한 한국 여행에 대해 신나서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쭉 나열하며 내 반응을 본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와, 재미있었겠다, 좋았겠다, 맛있었겠다.”라고 말하며 맞장구를 쳐 준다. 


며칠 전 잘 알고 지내는 이웃이 제주도로 자유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3박 4일 일정으로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자전거를 타고 빼어나게 아름다운 제주 풍경도 감상하고, 현지 음식도 맛볼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이렇게 자전거 여행, 템플스테이, 한옥스테이 등과 같은 체험 관광이 여행 트렌드라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 음식이 정말 맛있어요!” “김치를 좋아해요!”

내 주위에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많다. 김치 마니아들도 꽤 많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현지 친구는 포장 김치를 사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는다. 가끔 내가 겉절이를 담가 친구들에게 나눠 주면, 특별히 맛있게 담근 것도 아닌데도 온 식구가 맛있게 먹었다며 아주 고마워한다. 얼마 전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도 한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배추김치 10 kg을 사 왔다고 했다. 가족들 모두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현지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밥을 먹을 때 한식당에 자주 간다. 단골메뉴는 주로 비빔밥, 김밥, 떡볶이, 부대찌개, 해물파전, 잡채, 바비큐, 순두부찌개 등이다. 친구들은 나와 밥을 먹으면서 “맛있어요!”라고 말하며 연신 감탄다. 우리 집 근처 한국 슈퍼에서는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판다. 김밥 한 줄에 $8(약 8천 원)이 넘는데도 잘 팔린다. 저녁이면 매진된다. 싱가포르에서 한식의 인기가 높은 걸 나는 실감한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요!”, “드라마가 아주 재미있어요!”

내 주위에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많. 퇴근 후 자기 전까지 매일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직장인들도 있고, 주말이면 남편과 한국 드라마 몇 편씩 본다는 친구도 있다. 커뮤니티 센터(주민자치센터)에서 나와 같이 운동하는 싱가포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기 드라마와 그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 줄거리도 줄줄 꿰고 있다. “ㅇㅇ드라마 봤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남자 주인공이 아주 잘생겼어요!”라고 내게 말하며 재미있는 드라마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드라마를 통해 접한 한국의 문화에도 관심을 가진다. 다양한 모습의 시월드와 며느리 역할을 보면서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가 얼마나 있는지도 궁금해했다. 김장할 때 고무장갑 낀 손으로 김치를 둘둘 말아 입에 직접 넣어 주는 것, 목욕탕에 함께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이 낯설게 보였다고 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음식, 패션, 화장품에도 관심이 많다. 이런 이유로 한국을 여행한다고도 했다.      


처음 내가 해외 살이를 경험한 건 30년 전이다. 그때는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한에서 왔는지 북한에서 왔는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는 그때와 다르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만난 싱가포르 사람들은 한국을, 그리고 한국 사람인 나를 좋게 여겼다. 


얼마 전부터 딸이 싱가포르의 어느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출근 첫날, 딸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 직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직원 몇몇은 딸에게 앞으로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싱가포르 사람들이 한국에 호의를 갖고 있어서 기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아이들이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아이들에게 보이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단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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