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는 습관이 생겼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심지어 카페에서도 말이다. 중국어처럼 들리는 영어가 낯설었다. 영어와 중국어뿐만 아니라 타밀어와 말레이어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싱가포르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공존하는 나라이다. 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영어는 교육, 행정, 비즈니스에서 가장 널리 쓰이며, 영국식 영어를 표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영어인 '싱글리시'가 자주 사용된다. 싱글리시는 인종별로 발음과 억양이 조금씩 다른데, 이는 각자의 모국어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 결과이다. 그 속에는 다양한 언어적 감각이 녹아 있다.
싱가포르에 온 초반에는 익숙하지 않은 발음 때문에 상대방에게 되물어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호커 센터에서는 메뉴 번호와 수량만 간단히 말하니 소통이 수월했고, 택시에서는 목적지만 짧게 이야기한 후 "땡큐"라고 덧붙이니 한 번에 소통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발음과 억양, 그리고 말투에 익숙해졌다.
싱글리시의 특징을 이해하고 나니, 오히려 그 특유의 말투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가르쳐 준 대로, 싱글리시는 문장 끝에 "lah , ah, yah" 같은 접미사가 붙는 것이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Okay lah(오케이라)", "Thank you ah(땡큐아)", "Sorry yah(쏘리야)"같은 표현이다. 한국어의 "아이쿠, 이런"과 비슷한 감탄사로는 "Aiyo(아이요)", "Aiya(아이야)"가 있다. 또한 긴 문장을 짧게 간결하게 표현하는 경향도 있는데, "Can!(가능해)", "Cannot!(불가능해)", "No need(필요 없어)"와 같은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발음에서 자음 (l, d, k)이 종종 생략되어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었다.
싱글리시에 익숙해질 무렵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바로 중국계 싱가포르 사람들이 영어와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섞어 사용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영어로 시작했다가도 중간에 중국어로 전환하고,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도 두 언어를 섞어 말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나와 있을 때는 주로 영어로 말했지만, 그들끼리 대화할 때는 중국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듯했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언제 영어를 쓰고, 언제 중국어를 사용하는지, 왜 두 언어를 혼용하는지 말이다.
친구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중국어를 더 자주 사용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호커 센터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중국어로 말해. 그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거든. 영어를 잘 못하시는 어르신들과 대화할 때는 당연히 중국어가 편하지. 중국어를 사용하면 상대방과 좀 더 친밀하게 느껴져. 중국어는 우리들의 모국어니까. 그리고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 쓰는 건 그냥 별의미 없는 말습관이야.”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들의 언어 사용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덕분에 그들이 하는 말을 훨씬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동시에 중국어가 싱글리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싱글리시는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마치 내가 서울에서 표준말을 쓰다가도 가족들이나 고향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싱가포르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이제는 싱글리시에도 익숙해졌다. 가끔 인도계 싱가포르 사람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억양의 싱글리시를 들으면 여전히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대부분의 싱글리시는 이제 나에게 편안하게 들린다.
요즘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현지인들과 영어로 소통할 때 가끔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장을 간결하게, 핵심만 말하면 된다. 꼭 완전한 문장이 아니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