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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Oct 15. 2023

인생이란 게 뭐 이래?

방랑자처럼 산다

난간에 걸쳐서 생존하는 난초처럼


식물원에 갔다가 큰 돌덩이들 사이를 비집고 살아가는 난초들을 보았다. 비록 인위적으로 장식한 것이지만 그들을 보는 순간 이상한 감정이 교차한다.

"난초"라고 하면 식물 중에선 고급스러운 종류에 속하지 않던가! 나는 난초 선물을 받은 것 중에 제대로 살려 본 적이 거의 없다. 주인의 손때를 많이 타는 난초는 보름 또는 한 달만 내 손과 시선이 가지 않으면 시들시들하다가 죽어가곤 한다.

 우리 집에는 언니한테서 분양받은 난들이 몇 가지 있었다. 지난해 나는 그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까지도 버티면서 난초를 잘 키우려고 애를 썼었다. 그 결과 내가 집 떠나오기 전 올 3월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난초들이 생명을 유지했었다. 그런데 올 초여름부터 하나씩 하나씩 말라가던 난초들은 내가 9월에 집을 방문했을 땐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어지간이 관심을 자아내던 고급스러운 난초들이 아닌가! 그렇듯 마음에 부담을 주는 식물 중의 식물인 난초가 돌덩이들 틈새에서 비집고 올라와 생존력을 뽐내다니!

 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광경이다. '저러다 얼마나 버텨낼까'라는 콩닥거리는 심정으로 올려다보면서 '그래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대가 참 존경스럽다!'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





 20세기에 젊음을 불태웠던 우리 부부는 이상과 정신은 난초처럼 고고한데 몸과 현실은 낭떠러지 바위틈에 있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때는 소위 지성과 이성을 겸비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평범하게 소담스럽게 그렇게 인생을 엮어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소하게 꿈꾸던 시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21세기에 돌입하면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돌변한 세상이 되었다.

준비 없이 맞이한 돌변한 세상에서 우리 부부는 추락한 새처럼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어정쩡하게 공부한 학력이며 어정쩡한 경력이며, 어정쩡한 경제력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소시민의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군가처럼 주식하는 일상이라든가 누군가처럼 재테크에 올인하든가 누군가처럼 끈질기게 직장에서 버티고 버텨서 호봉수를 높였던가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살 수 없었다.

 생존력이 약했던 우리 부부는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며 요동치는 가운데 낭떠러지를 딛고 간신히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다. 돌덩이 틈새에서 살아가는 난초처럼 말이다.




인생은 나그네라더니...


  떠돌며 살다 보니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인생이 불안정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유목민의 후예인가'라고 어렴풋이 뇌리를 스칠 때도 가끔 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아이 낳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까지 다섯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 이사를 자주 한 데에는 직업적인 것도 있지만 몇 가지 열악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부부의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 성향적인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려서 한 곳에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첫째 아이는 변화를 싫어하고 성인이 된 지금도 이사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지난해에도 내가 직장을 멀리 선택하면서 우리는 또 한 번의 이사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녀들이 부모의 변화에 끌려다닐 나이가 아니었다. 자녀들은 우리 부부가 직장을 옮길 때마다 이사하는 것을 더는 반대한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자녀들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한 가정이 이사를 하는 것은 많은 경제적 손실을 따르게 한다. 물론 아파트값이 두 배이상 올라서 갈아타는 이사라면 손해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사에 따르는 비용이 많다는 것을 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이제는 웬만하면 손실을 줄이며 살아가자고 결심했건만 끝내는 올해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직장 말년에 야심 차게 살아보자고 선택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활인이 아닌 몽상가의 길을 택하고자 한다.

끈질기게 버텨내는 동료들의 모습을 배우려고도 했다. 몸에 익혀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도저히 뼛속까지 스며든 이상적인 가치들이 나를 괴롭히고 못살게 한다. 거기다 남편까지 응원을 한다. 에라, 모르겠다! 내일은 어떻게 되겠지.... 이게 은퇴를 앞둔 연령이 할 생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 년 동안 망설였지만 답은 하나다. 아닌 건 아니다! 이렇게 생활인의 옷을 벗게 되면서 경제적 사정에 의해 한 번의 이사를 또 앞두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라 하지 않던가! 언젠가는 세상도 떠나야 할 판인데 그깟 이사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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