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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Mar 25. 2024

인간의 조건 4

만남과 이별

수연이라는 아이

내가 수연이를 만난 건 6년 전,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수연이는 내가 뿌린 홍보 전단지를 보고 그녀의 아버지 손을 붙잡고 나를 찾아왔다.

수연이는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게다가 아빠와 엄마는 연령 차가 심하다. 당시 수연이 아빠 나이는 53세, 엄마는 32세다. 수연이가 아빠 손을 붙잡고 내 사무실을 찾은 이유는 수연이의 학습진로 상담과 논술지도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수연이 아버님 말씀에 의하면 수연이가 간곡히 부탁해서 찾아오게 됐다고 한다. 수연이 꿈은 방송인이 되는 것인데 한국어가 부진한 엄마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고 친절하신 아빠는 직장 때문에 항상 바쁘시다는 것이다. 그러니 논술지도를 받으면서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얻고자 했단다.

 어린 나이지만 수연이는 깜찍하고도 현실에 눈이 밝은 아이다. 나는 반짝이는 눈으로 수연이를 잘 지도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런데 수연이는 첫 시간부터 논술지도는 뒤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논술지도사가 아닌 수연이의 상담사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하여

"선생님, 엄마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엄마가 있는데 없는 거 같아요. 엄마는 딸이 어릴 땐 목욕도 시켜주고 먹을 것도 만들어주고 옷도 입혀주어야 하잖아요?"

 " 보통 엄마들은 그렇게 하시지... 그런데 수연이는 엄마가 바쁘신가 보구나?"

 "바쁜 게 아니라 엄마는 저한테 관심이 전혀 없어요. 본인은 화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아르바이트 다니는데 가족들에겐 관심도 없고 가족을 위해선 돈도 전혀 쓰지 않아요."

수연이는 자신의 핸드폰에서 엄마의 프로필 사진을 내게 보여주며 자신의 엄마가 창피하다고 말했다. 사진 속 엄마는 외모가 빼어난 미인이었다.

"오~ 어머님이 미인이시구나! 근데 수연이는 엄마가 왜 창피하니?"

"엄마가 다른 사람들보다 눈에 띄는 게 저는 너무 싫어요. 그냥 엄마가 평범하고 자상했으면 좋겠어요"

수연이는 엄마를 싫어하지만 엄마의 외모를 많이 닮아 보였다. 수연이가 엄마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걸 나는 어찌할 수 없어 듣고 있었다. 수연이의 불만을 대충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어린 나이에 아빠 같은 사람과 부부가 되어 아이를 출산한 수연이 엄마는 아이에게 애착이 없었고 아이를 낳기만 했지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안겨준 채 정작 엄마는 일하면서 베트남 친정식구들과 소통하며 지냈다고 한다.

수연이는 엄마가 딸에게 다정하고 집에서는 식사준비와 등교할 때도 함께 해주는 그런 엄마이길 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연이는 아빠 엄마와 쇼핑도 하고 놀이공원도 가서 함께 놀고 솜사탕을 먹으면서 엄마 아빠 사이에서 손을 잡고 그네도 뛰는 그런 상상을 수도 없이 했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바람과는 다른 자신의 일상이 수연이에게는 절망일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자체란다.

나는 수연이의 질문을 받고서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엄마란 어떤 존재일까?"

잘 모르겠다. 나도 엄마지만 엄마가 되기 위한 어떤 지침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엄마가 되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교육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엄마로서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의무감처럼 지녔을 뿐이지 엄마라는 존재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수연이와의 이별

수연이는 9개월 정도 나와 함께 독서를 하고 글쓰기와 말하기를 학습했다. 자신의 목표가 분명해서 그런지 학습능력이 제대로 향상되어 갔다. 나는 수연이에게는 특별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9개월 동안 수연이의 실력도 크게 향상되었지만 나 역시도 수업준비에 의욕이 솟았다. 하나를 배우면 열개를 응용할 줄 아는 제자가 있다는 건 교사들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많이 느꼈었다.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수연이와 나는 사적으로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수연이는 학교 독후감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도 가족들에게 연락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연락할 정도로 각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수업시간이 되었는데 수연이가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한 번도 결석하거나 지각한 적도 없었기에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30분이 지연되고 나서야 수연이는 오지 않고 그의 아버님만 나타나셨다. 나는 놀란 눈으로 

"아버님, 수연이에게 무슨 일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수연 아버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오늘 상담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어떤 일로..."

"사실은 수연이가 독서논술을 엄청 하기 싫어합니다. 그동안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열심히 책 읽고 독후감쓰고 이야기할 거리도 찾아서 수업준비를 했지만 집에서는 엄청 힘들어하더라고요!"

수연이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서 잠깐 동안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수업시간마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하던 학생이 이중적인 모습이었다니......

나는 수연 아버님에게 결론을 내리기 전에 수연이와 만나서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다음날 수연이를 보내겠다고 하시고는 돌아가셨다.

 다음날, 수연이는 약속한 시간에 문을 두드렸다. 수연이 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나는 웃으면서 수연이에게 독서논술이 어려웠냐고 물었다. 수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독서할 때나 글쓰기 할 때 머리가 많이 지끈거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꿈이 방송인이 되는 거였는데 안될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수연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정리를 하였다. 

"그래. 수연이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것은 충분히 인정되는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독서와 글쓰기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억지로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구나!"

"나중에 다시 독서논술이 하고 싶어질 때 다시 만나자! 그동안 수연이와 함께 해서 기쁘고 행복했다!"

나는 수연이에게 손을 내밀며 이별 인사로 악수를 청했다. 수연이는 쑥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선생님, 사실은요 독서논술이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파서 그래요.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베트남어를 배웠는데 베트남어로 책 읽고 글쓰기도 머리가 아파요. 저는 이제 어쩌죠?"

"앞으로 기회는 많이 있을 거야. 지금은 성장기잖니? 수연이가 성장하면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좀 더 쉽게 느껴질 수 있을지 몰라. 그럼 그때 다시 시작해도 된단다."

"네. 그럴게요. 선생님, 정말 그럴 수 있겠죠?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수연이와 나의 만남은 끝이 나고 말았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생사에서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수연이와의 이별은 지금도 가슴 한편에 아쉬움의 여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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