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생활을 할 때는 도시의 문화생활을 동경했었다. 십 대 소녀시절, 서울로 올라가 돈 많이 벌어 성공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공상 속에서 그려보곤 했었다. 친구들과 만나 "꿈"이야기를 할 때면 대다수 소녀들은 비슷한 상상을 하면서 웃곤 했었다.
<오래전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던 우물>
상상은 현실이 된다고 소녀들의 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친구들 몇몇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영등포로 올라와 취업과 입학을 했다. 고향에서 농사 일손이라도 덜어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바람이 있었지만 당시 소녀들은 고향을 떠나는 것만이 현명한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후 고등학교를 고향에서 무사히 졸업한 몇몇 친구들은 대학 입학을 빌미로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이렇게 매년 고향을 떠나는 청춘들이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정부와 고향에서는 청춘들을 고향에 붙잡아둘 대책마련에 둔감했다. 그러니 여전히 시골젊은이들이 생각하는 희망의 해답은 고향을 떠나는 것밖엔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무엇을 희망하는가?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밝은 미래에대해 희망할 것이다. 나는 농촌 생활을 해봐서 잘 안다. 시골 농촌생활은 젊은이에게 너무나도 선택의 폭이 좁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이 한 치앞을 바라보기에 여유롭지 않다. 무엇보다 외로움과 고독한 생활이다. 젊음의 특징은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와 빈번한 관계들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시골살이는 견문도, 경험도, 관계망도 제한적이다. 그러니 매스컴에서 비치는 현실과 시골 청춘들의 일상은 커다란 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대다수는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답을 얻기 마련이다.
어쨌든 푸른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수도권으로 올라온 30~40년 전 젊은이들은 이제 타향에서 환갑을 보내고 중장년시절을 보내고 있다. 삶의 형태와 모든 주변 환경은 몰라보게 변모하였고 고향을 떠나 타향에 터를 잡은 시골 출신들은 이제 더는 시골인이 아니라 도시인이다. 가끔 고향 친구들을 만나 잠시나마 향수에 젖어보곤 한다. 하지만 고향으로 다시 귀촌하고 싶어 하는 친구는 아직 없다. 오히려 귀농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농촌생활을 전혀 모르는 도시출신이거나 농촌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도시의 늪에 빠져 살면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형제들끼리 만나면 "언젠간 고향으로 돌아가 멋진 주택을 짓고 농사도 지으면서 죽을 때까지 모여서 오순도순 살면 어떨까?"라고 공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막상 "언제 고향에 집 지을 거야?"라고 물으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묵묵부답이다. 도시생활에 지쳐 살면서 우리는 망가진 자연과의 원활한 순환으로 다시 회복하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희망일 뿐 우리는 과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