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의 글쓰기 연습]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읽고 씀
1648년 혹은 1651년,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의 ‘누에바 에스파냐’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아홉 살의 나이에 남자 옷을 입고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던 그 아이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읽고 쓰기 위해 수녀의 길을 택하고, 명성 덕분에 궁에 입성하여 통치 권력의 후원을 받고 부왕비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작가가 된다. 그녀를 부르는 이름의 목록은 길다. 천재, 멕시코의 열 번째 뮤즈, 아메리카의 피닉스(맙소사), 괴물 혹은 프릭, 어쩌면 레즈비언, 아메리카 최초의 페미니스트. 그리고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여자’.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 Sor Juana Inés de la Cruz. (p. 옮긴이의 말)
모성은 여성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임신, 출산, 양육, 모성, 부모와 자식, 가족 그 모든 형태의 자연적 속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현대사회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성, 임신, 출산, 양육의 형태가 인간이라는 종에게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정말 맞을까? 인간의 문명이 어디서 어디까지 개입하여 만들어진 사회적 유산일까?
이 책을 통해 꽤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다뤄온 여성 임신과 낙태에 대한 존중, 혹은 극렬한 반대 그 두 입장에 대해서 또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바로 오늘 오후부터 이네스를 데리고 퇴원하셔서 일상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내 친구의 입에는 분명 냉소가 떠올랐을 것이다. 첫 아이를 낳은 후 집에 돌아간 어떤 여자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데, 하물며 알리나와 같은 상황에서라면야. 모성은 존재를 영원히 변화시킨다.
여성에게 임신이라는 이벤트가 일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정말 섬세하게, 하이퍼리얼리즘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이벤트에서 신생아에게만 초점을 두기에는 여성의 일생에 너무 큰 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것을 라우라의 독백 대사를 통해 계속 인지시킨다. 아이만큼 중요한 게 엄마,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임신부터 양육까지의 과정 중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서, 엄마는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아버지나 어머니랑 같이 사는 것 말고 다른 무슨 방법이 있어?” 알리나가 물었다.
“다른 많은 방법이 있지. 만일 너랑 나랑, 아우렐리오랑, 우리 딸들이랑 친구들 두어 명까지 같이 같은 집에서 살면서 일상을 공유하면 우리 삶이 어떨지 상상해 봐. 분명 훨씬 덜 피곤할 거야.”
그렇기에 여기 다섯 명의 여성은 여러 형태로 아이를 양육하기로 결정한다. 양육과정에서 엄마가 유일한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회가 만든 전형적인 '모성'의 상이 아닐까? 이러한 물음이 생길 정도로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의 형태를 그린 책이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모성은 항상 유연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서야. 종이 다른 암컷들이 다른 암컷의 새끼들을 돌보는 경우도 많아.'
그렇다면 이 여성들은 아이보다 본인의 몸, 본인의 인생을 더 사랑하기에 공동육아를 선택한 것일까?
그것 또한 아닌 거 같다. 공동육아를 선택하는 것도, 탁란을 고려하는 것도 전부, 너무나 사랑하는 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여성들의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아이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어떻게 하면 이 아이와 계속,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들이다.
나는 도리스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동생에게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네스가 혼수상태에 빠질 정도로 위험해졌을 때 하얀 박스 안의 주사약을 떠올린 알리나도, 이네스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이 폭풍 같은 시간 속에서도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을 강구한 행동이었다.
친권도 남자들이 자식을 인정한 후에 마치 지참금처럼 그들에게 바치는 예우 같은 것이구나 하고 혼자 읊조렸다. 사실상 우리 사회에게 자식은 아버지에게 선택적으로 어머니에게 의무적으로 귀속된다.
그러므로 작가가 냉소적이게 지적하는 것처럼 임신부터 양육까지의 모든 과정을 여성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그것도 신화적 이미지의 '모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생각해 보니 사랑이란 자주 비논리적이고 불가해한 것이었다.
이 모든 의무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나눠야 한다. '모성'은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성격의 변화, 호르몬의 변화, 태초부터 부여된!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아이에 대한 크나 큰 '사랑'의 마음인 것이다. 비단 임신한 여성만의 것이 아닌,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는 모두의 마음이다.
이 책의 캐릭터들은 무어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캐릭터들의 강한 의지가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 같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그 강렬함이 '사랑'이었나 보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는 여타의 페미니즘 서적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현대 사회 여성이 임신과 출산 등에 느끼는 불안과 여파를 여실하게 드러내었으며, 이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그와 동시에 강한 의지로 살아남은 아이 '이네스'는 정말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이네스 주변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행보도 비현실적이다. 이 책은 모두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현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삶은 비현실적으로 강한 의지로 이어지며, 이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이해와 연대가 꼭 필요하다는 것.
우리가 서로 함께 한다면 연약한 이 삶도 또한 이어지리라.
결국, 사랑하기에 계속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