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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유이 Apr 16. 2024

상냥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상냥해 줘

그냥

나를 보는 사람들은 대개 무서워하거나 편안해 한다. 대척점에 있는 단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는 늘 가벼워 보이고 싶었다. 무서워 보이지도, 의지가 되지도 않는, 그냥 길가의 낙엽처럼 어디든 굴러다니는 존재. 낙엽이 굴러도 웃는 사람들 앞에서는 신나게 굴러다니고, 싫어하는 사람들 눈에서는 어련히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나에게는 능력이 부족했다. 어릴 적부터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사람들 사이에 잘 섞이지 못하니 어딜 가든 얼룩말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보호색도, 무리를 이룰 군중도 없이 혼자. 괜찮지는 않았지만 버틸만 했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럭저럭 괜찮았으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이들은 하나같이 이미 큰 일을 겪어서 어딘가 크게 바뀌어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만족하면 모를까, 여전히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면서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자괴감이 섞인 무거운 가면을 이마에 박아 넣었다. 뚝뚝 흘리는 피가 너무도 선명해서 도저히 나만 그냥 저냥 잘 지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믿었을 때에는 글을 썼다. 그들의 이야기를 써 현실을 알린다면 누구든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믿는다. 그러나 이제 현실을 알린다고 해서 누구나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본 현실이고, 결국 그들만이 처한 환경이니까.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해는 못해도 손을 뻗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뻗히는 것은 주먹들이었다. 왜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데? 네가 이렇게 했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다고 그렇게 하면 되겠어? 날카로운 갈고리가 그들의 심장을 후벼 팠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믿는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손을 뻗어주었을 것이다. 너무도 정신이 없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 눈치를 보며 움찔움찔 손을 떠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주먹을 뻗었던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손을 뻗어주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게 꼭 나일 필요도, 내 친구일 필요도 없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라도 손을 뻗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직 나아질 희망이 있다.


결국 우리는 거대한 망 안에 엮여 있는 이음매다. 누군가 풀어진다면 그만큼 늘어지고, 누군가 당겨지면 그만큼 긴장되는. 하지만 그런 거 상관없이 조금만 더 상냥하게 대해주어도 좋지 않을까? 상냥하게 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상냥하고 싶어서 상냥할 수는 없는 걸까? 상냥하고 싶으면 상냥할 수 없는 걸까? 


오늘 던진 질문은 물수제비 마냥 수면을 스칠 뿐이다. 그러나 그 힘이 다 할 때면, 돌맹이는 바다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 내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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