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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Apr 06. 2024

흰샘의 한시(漢詩) 이야기_인생, 뭐 있어?

杜甫의 <曲江.2>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조회에서 돌아오면 허구한 날 봄옷 잡혀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날마다 강나루서 진탕 취해 돌아온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외상 술값 예사로이 도처에 깔렸으니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인생 칠십 살기는 예로부터 드물다지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  꽃 떨기 속 나비는 숨었다가 나타나고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물을 차는 잠자리는 나풀나풀 나는구나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유전)  풍광이여 이들처럼 천천히 운행하여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  잠시 감상하려는 맘 저버리지 말아다오.

<번역: 흰샘>     


위대한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곡강(曲江)> 2수 중 두 번째 시입니다.(첫 번째 시는 꼭 작년 이맘때 ‘흰샘의 한시 이야기’에 소개했습니다) 

이 시는 안사(安史)의 난으로 쑥대밭이 된 수도 장안을 간신히 수복한 직후에 지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보도 다시 장안으로 돌아가 좌습유(左拾遺)의 벼슬로 복직했지만, 방관이라는 벗을 두둔하다가(그냥 방관만 할 것이지) 숙종의 눈밖에 났던 시절이니 이래저래 우울했을 것입니다. 

아무려나 이 시는 <곡강(曲江)> 제1수와 더불어 너무도 유명한 작품인데, 우리가 잘 아는 고희(古稀)라는 고사성어도 바로 이 시에서 나왔습니다. 한 구절도 그냥 넘길 수 없어 제가 아는 만큼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제 1, 2구는 날마다 퇴근하면 강가 나루터 근처 주막에 옷을 전당 잡히고 진탕 취하는 시인의 생활을 묘사합니다. 여전히 나라는 혼란하고, 자신은 임금에게 눈총을 받고 있고,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이건 제1수에 나옵니다), 그러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술 마시는 일밖에 더 없습니다. 


두보의 시 전부가 다 유명하지만, 3, 4구는 더욱 유명합니다. 외상으로 마신 술값이 도처에 깔렸다고 한 것을 보면, 봉급날 갚겠다고 하고선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마셨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10집에서 봉급의 10배는 마시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사방팔방 술빚을 깔아놓은 이유가 바로 뒤에 나옵니다. 사람이 살아 봤자 70도 살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백세 시대라고 하는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습니다. 실제 두보는 60도 못 살았지요) 그러니 그런 인생 아등바등 살지 말고 술이나 마시며 즐겁게 살자는 것이야요. 


5 ,6구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관조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숨바꼭질하듯 꽃잎 사이를 드나드는 나비며, 장난치듯 물을 차고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며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헤아려 봅니다. 


7, 8구는 빨리도 피었다 빨리도 지는 봄꽃에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이 아름다운 봄날의 풍광에게 말을 전해 보는 것입니다. 풍광아, 저 나비나 잠자리처럼 좀 느긋하게, 좀 가볍게, 좀 천천히 가 주면 안 되겠니? 조금이라도 더 봄을 감상하고픈 내 마음을 저버리지 말고...(어쩌면 시인은 허구헌 날 술만 마시고 다닌다고 잔소리를 퍼부어댈 것이 분명한 아내에게도, 날마다 외상값을 독촉하는 술집 주인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제발 저 나비나 잠자리처럼 좀 느긋하고 가볍게 말해주면 안 되겠나...) 


인생 뭐 있나요?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고 무수히 지는 꽃잎 주워 산(算) 놓고 무진무진 마셔 보는 것은 어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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