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과 쿠페아

『꽃에 미친 김 군』(김동성 글 그림, 보림, 2025)

by 책읽는아이린

‘김 군이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꽃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밤사이 안부를 살피는 것이었다.’


나는 꽃 앞에서 오래 머문다. 휴대폰 앨범을 열면 꽃 사진이 유난히 많다. 아마 그래서였을까. 김동성 작가의 그림책 『꽃에 미친 김 군』을 읽었을 때 처음엔 웃음이 났다. 꽃에 빠져 하루 종일 꽃 책을 읽고, 꽃 그림을 보고, 꽃 시를 읊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고양이에게까지 꽃 이름을 붙여주다니, 그 열정이 귀엽고도 기이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니, 그 ‘미침’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었다. 나처럼 꽃을 좋아하되, 그보다 훨씬 깊이 몰입한 삶이었다. 하나를 오래 사랑하고 끝까지 몰입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삶을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그때 문득, 두 해 전의 일이 떠올랐다. 여름 초입, 공원 화단에서 처음 만난 작은 꽃이 있었다. 이름은 쿠페아. 보라빛 작은 꽃송이가 새끼손가락 손톱만 했고, 여섯 장의 꽃잎에 긴 통 모양의 꽃받침이 달려 있었다. 가지는 여러 갈래로 뻗었고, 잎은 좁고 길쭉했다. 다른 꽃들보다 키도 작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 눈에 들어왔다. 산책할 때마다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추었고, 작지만 강한 생명력이 매번 나를 붙잡았다.


쿠페아는 여섯 달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장마철에는 비에 젖고, 가을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쉽게 꺾이지 않았다. 마주할 때마다 ‘간밤에 잘 있었니?’ 속삭이며 안부를 묻곤 했다. 꽃송이는 작고 여렸지만, 초겨울이 오기 전까지 꽃잎을 놓지 않았다. 찬 바람이 불 때쯤, 점점 시들어가는 꽃이 오래 마음에 남아 나는 시 한 편으로 기록했다.


싸리 눈 흠뻑 맞고 새벽 녹인 마른 꽃

바람에 파르르 떨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다가가 두 손 내밀어 네 얼굴 감싸본다


- 자작시 <겨울 쿠페아> 부분



그림책 속 김 군은 나팔꽃이 절로 열리는 모습을 보고 꽃에 빠지게 되었다. 나 역시 쿠페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작은 꽃이 주는 집중의 힘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김 군을 두고 ‘꽃에 미쳤다’ 말했던 것처럼, 내 모습 또한 누군가의 눈에는 별것 아닌 데 몰두하는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꽃 앞에서 시간을 오래 두고 바라본 순간들 덕분에, 나는 ‘작은 것에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다.


쿠페아는 내게 연약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힘을 보여주었다. 김 군에게 꽃이 스승이자 벗이었다면, 내게도 쿠페아가 그러했다. 두 꽃은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한 사람을 몰두하게 만들고 삶을 지탱하는 힘을 주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앞으로 길 위에서 만나는 작은 꽃 앞에 잠시 멈추어 서려 한다. 그것이 내가 배운 몰입의 방법이며, 나를 나아가게 하는 시간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