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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척추 부러진 산모 (2)

병든 엄마와 첫째 이야기

by 오지의

못된 엄마라고 비난받을까 봐 어디 가서 함부로 말은 안 하지만, 나는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엄마다. 어린 아기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든지,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아이가 다친다든지, 부모의 단점을 자녀가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든지... 아기 엄마들은 매일같이 죄책감의 지뢰밭을 건넌다.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무척 관대해서(!)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아주 쉽게 용서한다.


쓰읍, 그래도 이만하면 됐지 뭘...


내 새끼는 따뜻하고 편안한 집에서, 여러 양육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내가 어린 시절 상상도 못 하던 호사를 누리면서 자라난다. 나머지 조금씩 어긋나는 상황들이야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만하면 충분히 괜찮다. 뭐, 내 아이의 의견을 물어본 건 아니긴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진 시점에도 나의 나태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를 안아 드는 것이 무리가 되자, 당장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 멈추지 않고 피가 났다. 유산 위험으로 수술을 받고, 조기 진통으로 입원도 했다. 만성적 골반 통증으로 지팡이를 짚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당연히 15kg 나가는 첫째 아이를 번쩍 안아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안아달라고 생떼를 쓰는 시기도 있었지만, 다행히 말이 통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설명해서 납득시키기로 했다.


"엄마가 지금은 몸이 아파서 안아줄 수가 없어. 대신 우리 침대에 누워서 같이 껴안는 건 어때?"

"엄마가 나를 안고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안아서 걸어 다녀요."

"지금은 허리가 많이 아파서 엄마가 힘이 모자라. 엄마가 다시 튼튼해지게 기다려줄 수 있어?"

"그럼 언제 다시 안아줘요?"

"음.. 가을에 동생 태어나면, 그때는 엄마가 안아줄 수 있지요."


대문자 T 엄마라서일까? 첫째의 요구를 연이어 거절하면서도, 죄책감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는 무리하면 자칫 둘째 유산/조산으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관절이 약해진 시기에 몸을 아껴 써야 앞으로의 육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앉은 채로, 누운 채로 포옹해 줬다. 한 번은 수영장에 데려가서 물속에서 실컷 안아줬다.


나름대로 상황 설명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서운함을 풀어주려고 애쓴 것이 먹혀서 다행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 아이는 더 이상 나한테 안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원래는 길 가다가 다리가 아프면 나에게 업어 달라고 하는데, 대신 벤치에 앉아서 쉬었다 가자고 해도 덤덤히 따랐다. 초인종을 누르고 싶으면 엄마한테 들어 올려 달라고 하는 대신 스스로 발판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에도 아이는 적응했다. 나는 출산하기까지 반년 넘게 한 번도 아이를 들어 올리지 않았고, 아이도 여기에 대해서 떼를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자연히 잊은 줄로 알았다. 세 돌 아기에게 반년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그동안 아이도 자랐을 테니, 더 이상 엄마 품에 안겨서 치댈 필요가 없는 시기가 된 줄로 무심코 생각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가고, 첫째를 만나러 첫 외출을 할 때까지도 그렇게 여겼다. 그때에도 나는 여전히 지팡이를 짚어야 하긴 했지만 친정 엄마가 아이를 조리원 앞까지 데려와주었다. 아이고 내 새끼. 하지만 뻣뻣한 엄마와 뻣뻣한 아들 간에 모자 상봉은 그다지 감동적이진 않았다. 친정 엄마만 감격한 채로 아이에게 어서 엄마 배를 만져보라고 하자, 첫째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 배에 손을 댔다.


"어때? 엄마가 홀쭉해졌나?"

"왜 엄마 배가 들어갔지요?"

"이제 동생 태어났잖아. 그래서 배가 좀 들어갔어."

첫째는 그제야 신이 나서 내 치마폭에 매달려서 말했다.

"엄마, 그럼 나 안아주세요. 안고 들어주세요."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너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었다. 표현을 안 해도 첫째는 매일같이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듣고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하루하루 기다렸다. 이 작은 아기가 혼자선 헤아릴 수조차 없는 날들을 참아왔다. 나는 슬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무릎을 꿇어 포옹해 줬다.


"이제 진짜진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잘 참아줘서 고마워. 엄마가 안아줄 수 있어."


나는 다행히 조리원에서 조금씩 컨디션을 회복했다. 둘째를 안아 드는 것도 가능해졌다. 누워서라도 호흡 운동, 코어 운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조리원에서 나올 때쯤엔 지팡이도 필요하지 않았다. 첫 아이도 실컷 안아줄 날이 멀지 않았다. 분명히 그랬었다.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첫째랑 겨우 하루밖에 보내지 못했다. 그런데 사고가 난 것이다. 척추가 부러지고, 몸이 망가졌다. 이제 당분간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은 기약이 없다.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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