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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고 척추 부러진 산모 (3)

애증의 수유, 눈물의 단유

by 오지의

모유는 분유로 대체가 가능하다. (완벽하지는 않다고 해도 어쨌든.) 하지만 모유 '수유'는 다른 어떤 행위로도 대체가 불가능하다. 그 점 때문에 나는 첫째 키울 때 모유 수유를 쉽게 끊지 못했다. 젖몸살 때문에 유방 마사지를 받고, 유두 모양 때문에 수유 컨설팅까지 받았기에 분유값의 수 배는 족히 넘는 돈까지 들어갔다. (모유의 장점인 저비용이 무색해지는 순간...) 무척 고생했고 꽤나 힘들었지만 5개월간 젖을 먹였다. 대단한 목적의식이나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 순간의 중독성을 떨치지 못한 결과다.


그 순간적 황홀함은 결국 둘째도 모유를 먹이게 만들었다. 둘째 임신 중에 건강이 좋지 않아 모유 수유를 오래 할 생각이 없었다. 빠른 컨디션 회복에만 집중할 요량이었다. 이번엔 초유만 먹이고 단유 해야지. 그 결심을 흔든 것은 아기였다. 둘째가 내 가슴팍에 매달려서 너무 열심히 젖을 빨았다. 게다가 첫째보다 빠는 힘도 세고 배불리 많이 먹었다. 경산모라 요령이 생긴 나는 젖양을 알맞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아기랑 합이 얼추 맞았다.


'하... 이러면 안 줄 수가 없는데. 너무 잘 먹네. 아깝기도 하고..'


직수를 반복하면 젖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유축만 가끔 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나는 어느새 둘째를 끌어안고 매번 직수를 하고 있었다. 보송보송 솜털 같은 머리털을 만지고, 애기한테 나는 젖내를 킁킁 맡았다. 아니 이거 어떻게 끊냐구요! 분명히 빨리 단유하고 관절 통증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수유 중에는 받을 수 있는 치료가 거의 없다.) 애기한테 홀려서 제 발로 다시 젖의 늪에 빠져들었다. 자고로 이런 미친 짓에는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다.


'그래도 유축보다는 직수가 훨씬 편하잖아? 유축은 기분도 울적해지고, 보람도 없고...'


어차피 즉시 단유를 하기엔 무리였던 것이, 젖양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당장 유축과 수유 중 한 가지는 하긴 해야 했다. 그러면 이왕이면 직수가 낫지. 유축은 기계로 하는 고독한 일이고, 아기와의 상호작용이 없다. 게다가 설거지도 한 무더기다. 그래서 유축만 반복하면 마음도 힘들고 몸도 지친다. 나는 내가 유축을 싫어한다는 것을 구실 삼아 애기를 실컷 끌어안고 원할 때마다 젖을 줬다.


'유축은 이제 그만할 거야. 직수도 횟수를 조금씩 줄이면 나중에 단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질색하던 유축. 하지만 이 상황에서조차 해야 할 줄은 몰랐지. 천추(척추의 하단 부분)가 박살 나 응급실에서 입원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모유가 저절로 흘러서 옷이 계속 젖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둘째 젖을 물리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골절이 심각해 MRI도 촬영 대기 중이었는데, 속옷까지 탈의해야 하니 패드로 갈무리할 방법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응급실에서 유축을 해야 했다. 단, 척추가 부러진 상태라 앉거나 서는 것은 절대 금지였다. 옆으로 누운 채로 낑낑대며 간신히 한쪽 유축을 했다. 이 아까운 젖을 아기 줄 수도 없겠지. 짜낸 모유는 버릴 수밖에... 이미 각종 약물이 투약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유를 집까지 배달할 방법도 없었다.


한쪽 젖을 유축하고, 몸을 뒤집어서 반대쪽 젖을 유축할 차례였다. 아주 느릿느릿 움직일 뿐인데도 골절 부위의 극심한 통증 때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불편한 자세로 간신히 유축을 마친 나는 젖병을 들고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이걸 어디다 두지...? 나는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버리지? 좁은 병상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손이 미끄러져 젖병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모유가 엉망진창으로 쏟아졌다.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태어난 지 2주 된 핏덩이 같은 아기를 집에 놓고 응급실에 실려왔다. 단유를 염두에 두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강제로 갑작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제 우리 아기 젖도 못 물리는구나. 비단 모유 뿐만이 아니었다. 당분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다친 엄마가 아기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시피 했다. 속이 상해 하루 동안 먹지 않고 울기만 하니 자연히 젖이 많이 줄었다. 그간 모유양을 조절하려고 여러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허탈할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눈물의 단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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