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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투병기도, 극복기도 아니다

고위험 임신과 버팀의 미덕

by 오지의

자고로 질병은 인간의 적이다. 병마와 싸워서 그것을 물리쳐야 할 때 우리는 '투병'이라는 말을 쓴다. 또한 역경을 이겨 냈다면 그것을 '극복'했다고 말한다. 투쟁과 극복. 우리는 영웅적 노력으로 악조건 속에서 승리를 쟁취한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고위험 임신은 임신 출산 중 임산부나 태아, 신생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임신으로, 임신 중 또는 분만과정에서 보다 세심한 관찰과 관리가 필요하다.

출처 :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하지만 고위험 임신은? '투병'하거나 '극복'해냈다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워낙 방대한 조건과 질환을 포함하는 용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임신과 싸우거나 임신을 이겨낸다는 발상이 다소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고위험이든 아니든, 아기를 갖는 것은 필연적으로 태아가 관여하는 복합적인 다자 관계이다. 아기라는 임신의 결실을 기다리며, 동시에 임신과 싸운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멋쩍다. 게다가 임신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다.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상태가 바뀌는 것이 임신이라, 수많은 생물학적 변수가 당사자의 통제를 벗어나있다. 그러니 노력으로 극복했다고 말하기도 어색하다.


노산, 절박유산, 자궁경부 무력증, 자궁경부 봉축수술, 조기 진통으로 입원까지...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다행스럽게 아기를 만난 나도 고위험 임신에 대해 미묘하게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 기다리던 둘째를 안겨준 임신, 여러 가지 고위험 요소 때문에 고생은 있는 대로 했지만 원망스럽지는 않다. 반면, 내가 암환자였다면 암세포를 명백한 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고위험 임신을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러 가지 조건과 의학적 도움이 잘 맞아떨어진 덕에 운 좋게 만삭에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노산은 나이 문제이니 애초에 이겨낼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렇다면 고위험 임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이것이 투병도, 극복의 대상도 아니라면 우리는 고위험 임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감히 제안한다. 고위험 임신에 대한 마음가짐의 정수는 '버티기'라고.


그래서 이 시리즈는 끈질긴 버티기를 위한 '버팀서'가 되었다. 어째서 버티기가 핵심인지는 전반부, 고위험 임신 개론을 읽으며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나의 고위험 임신 경험과, 고위험 임신을 대하는 건전한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부족한 글이나마 고위험 산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 또한 고위험 산모가 아닌 이들에게도 읽히기를 소망한다. '위험'과 '버티기'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임신과 출산의 본질적 속성을 짚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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