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의 죄책감에 대한 생각
3년 만에 둘째를 낳으니 그 사이에 업데이트된 육아 정보가 적지 않았다. 그중 하나는 RSV 예방접종인 베이포투스 주사다. 어라, 첫째 낳을 때는 이런 주사가 없었는데? 나도 잘 모르는 접종이라 알아보기 위해 유튜브를 켰다. 손가락 한 번 딸깍에 소아과 전문의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소아과/산부인과 의사가 운영하는 채널을 통해 전문가들이 접종을 권고한다는 것과 비용이 꽤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영상에 대해 채널 운영자의 또 다른 언급이 있었다. 그것은 의외로, '사과'였다.
아마도 내용에 대해 다소 공격적인 반응이 있었나 보다. 예상컨대 "너무 비싸서 맞출 수 없는데, 저 같은 엄마들 죄책감 들게 하는 영상이네요."라는 피드백이 아니었을까? 나도 아기 엄마이지만 동시에 산모에게 조언을 하는 산부인과 의사이기도 하다. 자연히 소아과 선생님의 사과를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의학적 권고안이 '죄책감'까지 만들어야 할 일인가? 그리고 권고자는 '죄책감'을 조장했으니 사과까지 해야 할 일인가? 육아에 관해서라면 이런 첨예한 상황이 자주 눈에 뜨인다. 어떤 선택은 아이에게 몹쓸 죄를 짓는 일이 되고, 또 한편에선 조언마저 조심스레 삼가야 하는 일이 된다.
주범은 물론 양육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문화일 것이다. 양육 방향을 지나치게 강요하거나, 엄마 노릇을 공공연하게 평가하는 분위기는 숨이 막힌다. 나도 애 키워서 잘 안다. "돌 된 애를 어린이집을 보냈어? 어휴, 너무한다... 애가 불쌍하네." "세 살까지는 엄마가 집에 있어야지. 벌써 복직해? 애들 정서는 어쩌려고? 돈이 다가 아니야~" 아무려면 양육자 본인만큼 자식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도 나름 내 사정과 아이 상황을 고민하고 판단하는 건데, 누군가가 간단히 평가절하한다면 발끈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엄마라는 정체성의 특수함이 있다. 나는 평범한 비난에 크게 타격을 입지 않는다. 나에게는 엄마 이외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딸, 피고용인, 국민 등등. 예컨대 누군가가 내가 효도를 안 한다며 혀를 끌끌 찬다면? 1초 만에 바로 인정할 수 있다. "네, 저 불효녀 맞아요..ㅠ" 아마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수많은 역할에서 완벽하지 않고, 대개는 완벽하려고 하지조차 않는다.
하지만 엄마 노릇이라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아주 사소한 문제 제기에도 쉽게 '긁'힌다. 하루는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 친정 엄마가 "네가 괜히 애를 자주 바깥에 끌고 다니니까 감기 걸린 거 아니겠니?"라고 하신 적이 있다. 아! (안 그래도 불효녀인) 내가 얼마나 노발대발했는지는 글로 다 옮기지 않겠다. 사실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어찌나 분하던지 눈물이 다 났다. '좋은 엄마'에 대한 외부적 압박이 강한 것과는 별개로, 동일한 이상향에 대한 내적 구심력 또한 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퇴근할 때마다 '내가 오늘 좋은 직장인이었을까?'라고 고뇌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잘 때마다 '내가 오늘 좋은 엄마였을까?'라며 반성하고 검열하게 된다.
좋은 엄마에 부합하는 조건의 개수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늘어나지만, 양육 환경은 그에 발맞추지 못한다. (3년 가정 보육을 권할 거라면 3년의 육아 휴직을 줘야 하지 않을까?) 나의 행동과 선택이 아이에게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와중에, 더 많은 육아 지침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온다. 안 그래도 부담에 짓눌리던 마음은 날카로워지고, 결국 불편한 감정은 외부로 전이된다. 처음에는 분명 나를 탓하는 마음이었는데, 감당이 되지 않는 순간부터는 남도 탓하게 된다.
왜 저에게 이런 걸 알려주나요? 죄책감을 느끼게 하다니, 너무하군요.
엄마 노릇이란 이렇게 밖에서 조여 오고, 안에서 폭발하는 압력이 부딪히는 지점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파열음이 아무 때고 '죄책감'을 운운하는 양육 문화라고 생각한다. 죄는 무거운 단어다. 처벌과 반성이 따라야 하는 엄중한 개념이다. 그냥 아쉽거나 미안하거나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서,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지경에 이르는 것이 완벽주의적인 육아 문화의 슬픈 단면이다. 하지만 육아는 성전이 아니고 생활이다. 양육자를 죄의 법정에 세우면 건전한 자기 방어 능력마저 상실한다. 물질과 시간, 정보의 한계 속에서 나름대로 정성껏 아이를 키우는 보통의 일상이 왜 죄가 되어야 하는가?
나도 내 애한테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싶고, 내가 내린 선택들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는 아기 엄마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모르거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서 해 줄 수 없는 것도 너무나 많다. 그래도 거시적인 차원에서 애정을 베풀고 안전을 제공했다면, 적어도 자식에게 죄를 짓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이 최선이거나 정답일 리는 없다. 육아에 대한 지나치게 경직된 기조는 양육자에게 부담감을 더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중대한 부작용이 있다. 때로는 정상적인 조언마저 왜곡되어 전달된다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