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건강해라
"건강해지라니? 괜히 그런 말 했다가 아기가 부담스러워하면 어떻게 해! "
이 늘어가는 걱정은, 또 다른 차원에서 까마득한 거리감을 만들었다. 산부인과는 원래 나에게 편하고 익숙한 곳이었고, 거기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랬다. 내 검사를 담당해준 의사는 나와 당직실에서 족발 뜯고 떡볶이 먹던 후배와 동료들이었다. 내 아기를 받아줄 교수님은 나에게 밤낮으로 의술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그러니 나는 출산을 위해 내가 졸업한 대학병원 산부인과에 편히 발을 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아기의 심장 이상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병원은 세상에서 가장 낯선 곳이었다. 분명히 익숙한 곳데도 느닷없는 역할을 부여받아 생기는 두 배의 이질감이 있었다. 시작부터 너무나도 오만했던 것이 문제였다. <질병은 환자에게 생기는 문제이고, 나는 치료해주는 의사야.> 나는 이런 식으로, 불운한 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는 당연한 진리를 간과했다. 나는 당사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아기가 아픈 산모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오만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감정이 무딘 편인 나는 환자들에게 갖고 있던 이해의 진폭이 너무 작았다. 아기가 아픈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환자 쪽으로 한 칸씩 내 역할이 옮겨지며 체감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이 많아졌다. 대신 초음파 검사 결과지에 한 줄 한 줄, 의증 진단명이 길이를 더해갈 수록 그만큼 나와 동료들의 간격이 한틈씩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 같았으면 자연스레 나눴을 사담은 나누지 않았다. 괜스레 위축되어서, 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럴진대, 다른 산모들은 그 거리감을 수백배는 더 느끼지 않을까?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무거울 것이다. 특히 아기가 위중할수록 아기의 부모도 덩달아 약자가 되는 듯하고, 의사의 소견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다는 위기감이 타들어가는 마음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것이다.
나는 아기가 아픈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이 나에게도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대신 절친한 산부인과 선배들에게는 마음껏 호소했다. 전공의 수련을 받으며 동고동락 했기에 인연이 깊기도 하거니와, 태아에 대한 이야기라면 척하면 척인 유능한 사람들이다. 나는 부모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했던 하소연을 재잘재잘 털어놓았다.
"선생님들 글쎄요, 우리 애기가 이것도 안좋고. 저것도 안좋고. 휴... 요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
내 이야기를 들은 선배들이 제각기 관심과 염려를 표현했다.
"그래? 결손 유형이 어떤데? 크기는 재봤어? 별로 크지 않네, 다행이다! 흠, 삼출이 왜 생겼을까. 언제부터 생겼어? 그래도 경증이면 예후 좋은거 알잖아~ 아가도 괜찮아질거야. "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지식을 보태어 해주는 이야기에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잠자코 있던 한 선배가 말했다.
"맘고생이 참 많았겠네. 그래도 너무 걱정 말아요. 나도 그랬어요~"
돌 된 아기를 키우는 선배였다. 아...! 이 선생님 아기도 심장이 안 좋았었나보다. 나는 놀라면서도, 동시에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선생님 아기도요? 어머, 전혀 몰랐어요. 지금은 좀 어때요?"
그녀가 약간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아니아니, 제가 그랬어요. 내가 어릴 때부터 pericardial effusion(심낭막 삼출액)이 있거든요."
의외의 이야기에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나 그래서 정말 온갖 검사 다 받고 컸어요. 그런데 괜찮아요. 지금 이렇게 멀쩡히 잘 지내잖아요."
곱씹어보니 자신의 경험을 선뜻 나누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가지는 가치도 있다. 논문과 교과서가 해줄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료라면, 개별적 경험에 의존하는 것보다 연구와 통계를 참고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료실 밖으로 나온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간 배워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도 공감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의사다움의 일종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글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이만큼이나 써버렸으니 발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도돌이표 같은 걱정을 그만 두기로 했다. 양수가 모자라서 다소 일찍 태어난 우리 아기는, 다행히 심장이상은 호전되었지만 대신 몇 가지 다른 문제가 있어서 추후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우리 아기, 건강하렴. 물론 아픈 구석이 있어도, 엄마 아빠가 우주만큼 사랑하고 변함없이 돌봐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