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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선 Mar 08. 2022

"선생님은 시야가 좁아본 적이 없어서"





요즘 내겐 지압원 가는 게 삶의 낙이다. 3주에 한번 꼬박꼬박 가서 같은 선생님께 통증 경감 지압을 받는다. 선생님이 목을 주무르면 손가락까지 저릿저릿하고, 발목을 풀고 나면 추운 길거리에서도 후끈후끈 열이 난다. 목을 건드린다고 해서 손가락까지 저린 사람이 많지는 않다는데, 아마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나는 지압원 선생님께 호감을 갖고 있는데, 이유는 선생님이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주시기 때문이다. 


"처음 왔을 때 이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나 했는데..."


선생님은 내 딱딱 어깨, 딱딱 허리를 치료해주시며 통증으로 가득할 이 몸으로 먹고 살겠다고 출퇴근하는 나를 걱정해주신다.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골반이 부러졌다 붙느라 내 몸은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왼쪽 다리가 약간 짧고, 척추 측만이 있으며, 왼쪽 골반의 유연성이 떨어져 허리가 그렇게 아픈 거라고 한다. 말려있는 어깨를 풀어주실 때도 "일을 많이 해서 그래요." 라거나 "일을 좀 적게 하세요." 라고 말씀을 해주시는데, 동정받는 게 좋아서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정말 불쌍한 거 같고, 되게 수고하는 것 같아서 정신건강도 꾹꾹 지압을 받는 기분이 든다.



스트레칭을 자주 해야하며, 운동을 해야한다는 것도 선생님의 주요 관심 사항이다. 2017년부터 다니던 수영장을 요즘도 계속 다니고 있다. 수영을 한다는 말에 선생님은 그거라도 꼭 해야한다고 다행이라고 하셨다. (다른 선생님께 지압을 받을 때도 온 몸이 문제인데 허벅지 근육 덕분에 겨우겨우 몸을 부지하고 다니는 거라는 식으로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그래서 지압을 받을 때 종종 수영 얘기를 할 때가 있다.




"6년쯤 했으면 수영을 잘하겠네요?"

"그냥... 영법은 다 할 수 있어요."

"수영 할 때 줄을 맞춰 가는 건 눈으로 보고 하는 거죠?"

"글쎄요? 머리가 흔들리지 않으면 일직선으로 가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내 담당 선생님이 눈 앞을 정확하게 보는 분인지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 대충 (난 덩어리도 크니까) 내 쪽은 보고 움직이시는 듯해서, 선생님이 얼추 볼 수 있는 분이려니 짐작만 했을 뿐이다. 선생님이 다시 말했다.


"선생님은 시야가 좁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실 거에요."

"......"

"내 고향이 바닷가거든요. 헤엄을 칠 줄 아는데, 수영을 배우러 가보니 줄을 못 맞춰서 자꾸 옆 사람하고 부딪치게 되어서 안 가게 되더라고요. 줄을 어떻게 맞추는 거예요?"


자유형을 할 땐 하늘색 타일 사이의 군청색 줄을 보고, 배영을 할 때는 수영장 천장의 흰색 타일을 본다. 시야가 좁아졌다는 지압 선생님의 눈에 어디까지 보일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이 대화 후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을 찾아 읽었다. 처음엔 책을 집에서 찾지 못해 pdf를 찾아 원문으로 읽었다. 아내의 상사였던 '맹인'이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고, 나는 그 남자와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가 한번도 본 적 없을 '대성당'의 첨탑의 모양을 그에게 설명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게 이 소설의 이야기의 얼개.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번역, 문학동네, 2014


이 구절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My eyes were still closed. I was in my house. I knew that. But I didn’t feel like I was inside anything.
“It’s really something,” I said.


지압을 받고 나면 반려 근육통이 사라져 몸이  흐물흐물해진다. 자유형을 하며 휙휙 목을 돌릴 때, 팔을 끝까지 뻗을 수 있을 때 나는 내 몸이 이전의 몸과 다르다는 걸 느낀다. 잠시나마 새사람이 된 그 몸으로 나는 눈을 감고 헤엄쳤다. 머리가 흔들리지 않고 줄을 맞춰 가며 된다고 했던 나, 몸이 벽을 박거나, 레인 옆의 코스로프와 부딪쳤다.


눈을 감은 채 헤엄치느라 뻗은 팔. 긴장한 채 뻗은 목덜미. 나는 레이먼드 카버적인 그 순간을 느꼈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It's really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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