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사소한 음악 취향을 속속히 알 수 있다는 점은 SNS의 몇 안 되는 순기능 중 하나이다. 심지어 얼굴과 이름은 알지만 대화를 나눈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어색한 사이일지라도 종종 올라오는 스토리와 게시물을 보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지 찐친급으로 아는 수준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내 취향을 누군가가 딱 알아볼 때..! 내적 친밀감이 왜 생기는지 이해가 가길 마련이다.
언젠가 별생각 없이 재즈 리버레이터즈(Jazz Liberatorz)의 곡을 스토리에 공유한 적이 있었다. 그리 친하지 않은 음잘알 대학 과선배로부터 답장이 왔다. 자기 최애 앨범이라고 한다. 만약 그 선배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두 번째 정규 앨범 <Fruit of The Past>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재즈 리버레이터즈의 음악은 그저 듣기 좋은 재즈 힙합쯤에서 그쳤을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왜 이 앨범이 선배의 취향인 걸까?
디제이 계정을 보면 우선 팔로우를 해놓고 보는 습관이있다. 혹여 좋은 음악을 추천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최근에는 작은 바를 운영하고 있는 디제이의 계정을 팔로우했다. 종종 소장 앨범을 스토리로 공유하는데하나같이 괜찮은 앨범이다. 게시물과 스토리는 샅샅이 스캔하지만 정작 디제이의 바에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오늘 스토리에 올라온 사진은 마침 재즈 리버레이터즈의 두 앨범 <Fruit of The Past>와 <Clin D’oeil>. 전자는 전에 들어봤으니 오늘은 후자를 들어보자, 그 자리에서 <Clin D’oeil> 첫 트랙을 재생했다.
앨범 커버는 블랙 재즈 레코드의 카탈로그를 떠오르게 한다. 검은색 바탕 위에는 소녀와 소년이 양다리를 찢으면서 있는 힘껏 점프하는 모습을 (멤버로 추정되는) 남자 셋이 바라보는 흑백 사진이, 그리고 동글동글한 서체가 있다. 더 파사이드의 디제이 팻립과 브랜드 누비안의 래퍼 사닷 엑스 같이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띈다.
재즈 리버레이터즈에 대한 정보는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레이블 모 타운 (Motown)의 ‘모’와 비슷하게 발음하는 프랑스 모(Meaux) 지역에서 활동하는 세 명의 디제이가 결성했다는 것과 독립 레이블에서 발매한 그들의 첫 앨범이 프랑스에서만 십만 장의 판매를 기록한 것이 전부다. 어느 정도 알려진 과거는 있지만 지금은 잘 모르는 그룹의 음악을 몇몇 사람들이 찾아서 듣고, 사서 듣고, 최애라 말하는데괜히 내가 반갑다. 원래부터 내 취향이었던 듯이 앨범을 계속 듣는다.
재즈를 살리다, 혹은 훔치다. 재즈 리버레이터즈(Jazz Liberatorz)는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Liberator”는 해방자의 뉘앙스가 강하지만, “Liberate”라는 단어는 무언가를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와 무언가를 훔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디제이 세 명이 뭉쳐서 만든 팀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Clin D’oeil>은 훔치는 샘플링 작업을 통해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어 살리는 디제이(넓게 보면 힙합)의 정신이 전반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Rap was a vehicle for stopping the violence
랩은 폭력을 멈추는 매체였어
Just as jazz was back in the days
저 옛날에 재즈가 그랬듯이
Back in the 60s, back in the 30s
60년대, 30년대에 그랬듯이
Quincy Jones, McCoy Tyner, Grant Green
퀸시 존스, 맥코이 타이너, 그랜트 그린
Wes Montgomery, Elvin Jones, Miles Davis
웨스 몽고머리, 엘빈 존스, 마일스 데이비스
Eric Gale, Phil Sanders, Freddie Hubbard
에릭 게일, 필 샌더스, 프레디 허바드
Billy Higgins, Jimmy Smith, Wayne Shorter
빌 히긴스, 지미 스미스, 웨인 쇼터
Ahmad Jamal, Thelonius Monk – all big influences
아마드 자말, 셀로니어스 뭉크 - 모두 큰 영향을 주었지
For what it is that we do
지금 우리가 하는 것에
And what it is that we are
지금 이렇게 우리가
As we take our stance in music
음악을 대하고 있는 것에
앨범에 참여한 이들은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재즈와 힙합을 열거하며 찬미한다. 바통을 이어받듯이 매 곡의 아웃트로마다 다음 주자가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샤라웃을 보낸다. 마치 인스타그램에서 다양한 유저의 스토리를 보는, 그렇게 이들의 취향을 조금 더 면밀하게 알아가는 경험을 앨범을 들으면서 하는 것이다. 옛 것과 자신의 취향을 구미가 당기게 장식하여 내 논 것을 보면 재즈 리버레이터즈(Liberators)는 해방보다는 리스너 앞에 취향을 직접 소환하는 서머너스(Summoners)에 가깝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