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2001년 가을

현장 리포트 II

by Spero

뉴욕, 그해 가을


2000년 평양의 열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 나는 이듬해 가을 뉴욕에 있었다.

그해 가을은 뜨거운 양철 지붕 같았다.

9.11이 터졌다.

공간적으로는 평양보다 훨씬 먼,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뉴욕, 하지만 9.11 테러 여파로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서 운 좋게(?)도 나는 맨해튼 한복판에 있었다. 나는 세기의 특종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에 무지개를 처음 본 어린아이처럼 들떠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현장에 있었지만 현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장 리포터였다. 뉴욕시가 현장에 가장 가깝게 접근 취재할 수 있는 권한을 NY1과 같은 로컬 방송사에만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좀 더 떨어진 현장은 CNN과 NBC, CBS, ABC와 같은 뉴스전문 채널과 지상파 방송사에 한해 허용했다. 신문기자들은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구역에 머물러야 했다. 외신 기자들은 현장 주변 접근조차 불가능했다. 이럴 경우 현장 리포트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해 전 평양은 원천적으로 취재가 불가능한 지역이지만 한시적으로 취재가 보장된 지역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1년 9월의 뉴욕은 취재가 가능한 지역이지만 한시적으로 접근이 제한된 지역이었다. 테러 발생 초반 현장 주변엔 폴리스 라인이 겹겹이 쳐 있었다. 외신을 인용 보도하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테러 발생 초기의 현장 리포트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앵커멘트]

뉴욕에서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지 구조상황 알아보겠습니다. 김호성 기자!

[기자]

네 지금 까지 구조된 전체 실종자는 대략 5천여 명 정도 보고 있고요, 지금까지 발굴된 시신은 200여 구 정도 지금까지 공식적인 발표 자료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발굴된 시신 가운데 확인이 된 시신은 불과 25%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발굴된 시신이 발견된 가운데 전신 시신은 많지가 않고 나머지 부분 시신이 발견됐기 때문에 신원확인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문제는 지금같이 발굴 작업이 빨리 진척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이유는 도미노 붕괴라고 일컬어지는 주변 건물들의 붕괴 우려 때문입니다.
두 개의 큰 건물 다시 말해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져 내린 뒤에 옆에 있었던 7번 건물이 붕괴가 됐었고 나머지 건물들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라는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어젯밤 같은 경우에 밀레니엄 힐튼 호텔 빌딩 건물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라는 얘기가 있어서 구조작업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지금 현재 소방관 300여 명이 무너진 건물 밑에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한 열 명의 경찰관이 살아있는 채 매몰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휴대폰을 통해서 주로 신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구조가 늦어지게 될 경우 매몰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점차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뉴욕은 어젯밤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비가 대충 그친 상태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구조작업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 될 것으로 주변 사람들이 관측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우려되는 상황들은 대체로 4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추가 테러의 위협입니다.

(...)


이후 리포트는 아래 링크 동영상을 참고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myF0iF7y8wg


현장 리포트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상이 필수적이다. 안타깝게도 9.11 테러 당시 나는 카메라 기자와 함께 있지 못했다. 현장 상황을 전하는 리포트의 밑그림은 거의 전적으로 CNN 화면에 의존했다. 맨해튼 현장의 테러 소식은 뉴욕 현지 전화 연결을 통해 전달하고 화면은 외신의 자료화면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사실 이 같은 현장 리포트는 서울에 있는 보도국 국제부 데스크에서 전화 연결을 통해 전달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현장 리포트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리포터의 역할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일까? 나는 이 부분에 고민했다.

현지 자체 화면 없이 전화로만 연결하는 내 리포트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비주얼 하게 전달될 수 있을까? 내가 전하는 현장 곳곳의 디테일 묘사에 무덤덤하게 깔리고 있을 평면적인 CNN 화면을 생각할 때마다 착잡했다. 오디오만으로도 비디오가 느껴지는 전화연결용 워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사를 쓸 때마다 난감했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직접 내 눈으로 목격한 스케치 리포트를 하기 시작했다.


“사태 발생 이후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추가 테러의 위협입니다. 한인 밀집지역인 퀸즈 플러싱 지역의 경우 어젯밤 추가 테러가 있을 것이란 허위 제보로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3500여 한인들이 모여 사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경우 오늘 현재까지도 교통편이 두절돼 사실상 주민들의 발이 꽁꽁 묶여 있는 상태입니다. 맨해튼 현재 분위기, 이렇습니다. 곳곳의 건물과 상점, 아파트에 성조기가 내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성조기를 단 차량들도 눈에 많이 띄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증권시장은 월요일 개장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됐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 시간 폐장 기록입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번 주말의 풋볼 게임은 취소됐습니다. 베이스볼 게임 메이저리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현재까지도 TV는 일체 광고방송을 내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니치빌리지. 세인트빈센트 병원 등 5개 병원 헌혈센터는 여전히 붐비고 있습니다.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벽보가 전신주를 비롯해 곳곳에 나붙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장은 팩트의 바다다. 그 바다를 유영하는 사람이 기자다. 안타깝게도 광대한 바다에서 전체를 조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언론들은 영향력이 막강한 다른 미디어를 인용한다. 종속은 독립보다 쉬운 일이다. 굳이 기자가 현장에 가있을 필요조차 없다. 나는 종속의 부끄러움을 어떻게 이겨 내려했을까?


부끄럽게도 나는 9·11 취재에 관한 한, 미국 방송사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하나의 벽돌(another brick in the wall) 일뿐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현장의 팩트와 그 이면을 확인 취재하는 독립된 저널리스트가 아닌, CNN의 릴레이 리포터 수준? 가치중립적 입장을 지지하는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어느 한 사람에게 테러리스트는 또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위한 투사일 수 있다”는 정의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테러리스트에게 반론권은 없다. 그렇다면 테러는 누가 규정하는가? 나의 뉴욕 9·11 취재는 가치중립적인가?


나는 현장 리포트가 갖는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사태 발생 닷새만에 나는 비로소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스트레이트'와 '리포트' 챕터 이후 쓰게 될 <피처 스토리> 장을 통해 당시 고민의 흔적을 밝히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