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000년 여름

현장 리포트 I

by Spero

현장 리포트, 방송뉴스의 처음이자 끝


방송뉴스의 백미는 현장 라이브다.

여기에서 지금(Hic et Nunc) 벌어지고 있는 뉴스를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것이다.

수많은 스토리가 나오는 현장은 스트레이트 한 건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단순한 사건사고 현장이 아닌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사안의 경우 리포트를 통해 소식을 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사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34년 동안 현역으로 일하면서 기자라는 직업으로 현장에 있었을 수 있음을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두 사례를 통해 현장 리포트를 들여다 보기로 하자.

하나는 내가 원한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이른바 비자발급이 불가능한 곳에서 한 현장 리포트, 다른 하나는 현장에 있긴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장 접근이 불가능했던 곳에서 한 현장 리포트다. 하나는 한반도 안에 있으나 가기 힘든 평양, 둘은 태평양 건너 뉴욕이다.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축복이라 여기고 있는 내 젊은 날의 초상이 오버랩되는 현장이다.


평양, 그해 여름


냉면 한 그릇이 당기는 한여름이다.

11시 넘어서부터 줄을 서는 서울의 필동면옥, 을밀대 등 유명 냉면집을 볼 때마다

2000년 평양 옥류관이 생각난다.

생각난다기보다 그냥 생각나기만 한다.

남측 공동취재단의 일원이었던 나는 평양냉면 맛이 어땠는지 기억에 없다.

냉면을 먹었는지 들이켰는지 지금도 실감 나지 않는다.

솔직히 옥류관에서 펼쳐진 남북 이산가족상봉 현장 취재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밖엔 없다.

기자가 현장 리포트를 하기 위해 찾아 간 현장은 늘 부산하다.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고, 맛집을 음미할 겨를이 없다. 냉면을 먹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되는지, 그 가운데 화제의 인물은 누구인지, 인터뷰를 누굴 할 것인지, 그날 식탁에는 냉면 말고도 어떤 음식들이 나왔는지, 호스트의 인사말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현장은 관광지가 아닌 팩트의 바다, 그 바다에서 팩트를 챙기고 리포트를 만드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다.

나는 2000년 8월, 한 시간 비행으로 훌쩍 가닿을 수 있는 곳, 그러나 비자발급이 불가능해 갈 수 없는 곳, 때마침 남북정상회담 이후 공적 임무 수행자들에게 반 세기만에 하늘길이 열린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현장 리포트를 위한 준비


현장 리포트를 위해 할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현장에 일찍 도착해야 한다.

현장에서 펼쳐질 상황에 대한 사전 취재가 필요하다.

보도자료를 통해 나온 내용은 기본이고, 현장 관계자를 통해 디테일 취재에 들어간다.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가를 판단한다.

사전에 인터뷰이 섭외를 마친다.

섭외가 불가능하면 현장에서 싱크(현장음)를 딴다.

그렇게 2000년 8월 남북 이산가족상봉 현장 리포트를 만들었다.


제목 : 홀몸으로 만난 딸

[앵커멘트]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 왜 이제 오셨어요.”

딸의 통곡과 어머니의 오열.

반세기 만에 만난 모녀의 상봉은 평양 고려호텔에 마련된 단체상봉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평양에서 공동취재단 김호성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원고]

[싱크-이렇게 만날 줄 믿었어요, 내가. 왜 인제 왔어요, 그리웠어요]

기억할 수 없는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아가의 모습으로만 남아있는 딸에 대한 기억.

모녀는 마침내 바닥으로 쓰러져 부둥켜안고 오열했습니다.

1946년, 네 살 난 딸을 황해도 친정에 두고 남편과 춘천으로 온 뒤 전쟁이 터져 생이별을 한 일흔아홉 살 김장녀 할머니는 딸의 울부짖음에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싱크-어머니와 딸]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의 얼굴이지만 살아생전 소원이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었다는 딸 앞에

김 할머니는 미안하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는 말만 되풀이했고 딸은 이어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삼촌마저 세상을 떴다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헤어질 당시 딸과 함께 두고 온 아들의 안부를 묻자 오빠는 전쟁 중에 죽었다며 딸은 또 한차례 오열했고 순간, 김 할머니는 망연자실했습니다.

함께 월남한 남편마저 15년 전에 세상은 뜬 뒤 홀몸으로 살아온 김 할머니에게

딸은 54년 만에 새롭게 찾은 혈육이었습니다.

[크로징]

부둥켜안고 통곡을 한들 이산의 아픔이 온전하게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분단에서 화해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이들에게 오늘 밤은 평생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평양에서 공동취재단 김호성입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00/nwdesk/article/1866646_30735.html


위 방송 리포트에 들어간 구성요소는 아래와 같다.


1. 앵커멘트

2. 팩트

3. 현장 스케치

4. 현장 싱크

5. 스탠딩(클로징)


이산가족 상봉 현장은 늘 그렇듯 눈물과 통곡으로 가득 찬 감정의 소용돌이 그 자체여서 차분한 취재가 불가능하다. 상봉 당사자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같은 현장은 팩트보다는 상봉 현장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혈육 상봉의 감정선을 따라 현장음을 최대한 살리면서 현장 스케치를 하는 것이 시시콜콜한 팩트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럴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싱크, 즉 현장음이다. 방송용 ENG 카메라는 기자의 마이크와 연결돼 있는 채널 1, 현장음 잡아내는 채널 2로 오디오를 채집한다. 반세기 만에 극적으로 상봉하는 모녀 바로 옆에서 취재하면서 기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마이크를 최대한 모녀 가까이 들이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 채널 1과 채널 2를 통해 현장감 있는 오디오를 생생하게 잡아낼 수 있다.

스트레이트는 발로 쓰고 리포트는 머리로 쓰지만, 때때로 현장 리포트는 가슴으로 쓸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평양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뒤 쓴 취재 후기의 일부분이다.


이산가족 취재의 현장을 서술어로 스케치하는데 개인의 역량이 미치지 못함을 솔직히 고백해야겠음. 실제로 평양 취재 당시 방송 스타일 구어체의 기사 작성에 몹시 애를 먹음. 명사형으로 뚝뚝 끊기기만 하는 이 목메어오는 감성! 기자의 기본 덕목인 냉철한 이성의 끈을 가능한 한 놓지 않으려 했으나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의 벽 앞에서 번번이 주저앉았음. 이산의 한이 풀리게 되는 날 쉽게 쉽게 기사도 쓰일 수 있게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