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함께 보는 게 좋다.
토토 곁에 알프레도가 있듯.
내 인생 최고의 영화는 여전히 '빠삐용'이지만, 가끔씩 그 선택이 "맞을까?" 싶을 때가 있다.
좋은 영화가 많아서 그럴 거다.
구순 넘으신 어머님과 보는 영화는 선택의 폭이 좁다.
24시간 5분 대기조가 안쓰러워 아내보고 친구라도 만나고 오라며 강권한 뒤,
등 떠밀 듯 아내를 내보내면 그때부터 어머님과 둘만의 시간이다.
한낮의 TV는 재미없다.
전날 뉴스 아이템을 이리 볶고 저리 지지고 시사 프로그램 패널들의 언급은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드라마는 재미없고 예능은 지루하다.
"어머님 영화 볼까요?"
하고 넷플릭스를 튼다.
아흔 살 이상 어르신이 못 볼게 뭐람, 하면서도 19금은 패스.
지난번 이창동 감독의 '시'(詩)를 보다가 중간에 끌까 말까 망설였다.
어머님께서도 익숙한 배우를 찾다가 윤정희 주연 영화를 찾았다.
15세 이상 관람이어서 마음 놓고 보다가 그만...
아 글쎄, 곱디고운 윤정희 할머니가 돈 많은 지체장애인 김희라와 욕실 씬을 찍었는데, 뭐 그리 수위가 높진 않았어도 시추에이션이 영.... 그랬다.
학교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중학생 손자 녀석 살리기 위해 할머니께서 몸을 던져 합의금을 만드시는 과정이 그저 짠한 것이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영상을 보기엔 좀 그랬던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어머님과 사위의 공동시청 관람등급은 무조건 ALL,
해서 선택한 오늘의 영화는 '바보야'였다.
가톨릭이신 어머니께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은 그 누구와도 비교불가다.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평생을 믿음으로 따라가신 분이시다.
때론 웃으시면서, 때론 눈시울을 적시시면서 끝까지 보셨다.
현직을 마무리하고 떠나며 추기경께서 말씀하셨다.
"일흔 넘어서 제일 하고 싶은 게 운전을 배우는 거야, 밤마다 몰래 나가서 버스타지 않아도 되잖아."
이 대목에서 물었다.
"어머님은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시면서 답변하셨다.
"난,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어, 죽기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뭘..."
괜히 물었나 싶었다.
이런 식의 말씀을 하시면 예전엔,
"처녀 시집 안 간다. 장사꾼 손해 본다는 얘기 또 하시네요"
하고 받아쳤다.
그러면 함께 웃곤 하셨는 데 요즘엔 침묵 모드이시다.
추기경께서는 "모든 이의 밥이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어머님은 추기경의 소망을 일찌감치 이루신 거다.
삶 자체가 모든 가족들의 밥이셨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모든 이의 밥이 된 이후는 없는 걸까?
뭐,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이제 달력 마지막장을 걷어내면 어머니께서는 아흔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