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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20. 2024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24

 2022년 6월 2일

 걷기 20일 차: 레디오스 -> 사아군

 오늘은 프랑스길의 중간 지점이라는 사아군에 가는 날이다. 까리온, 사아군, 템플라리오스 등의 마을이 프랑스길의 중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사아군에서는 사아군까지 잘 도착했다는 증명서를 준다고 한다.

 요즘엔 출발 시간이 빨라져서 길에서 일출을 보는 일이 많다.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 예쁜 일출.

 늘 등 뒤에서 해가 뜨는데 오늘은 길 왼편으로 해가 솟아올랐다. 하늘도 파랗고 밝아서 해가 뜬 줄 알았는데... 구름 속에 가려진 해가 더 신비로웠다.

 지난번에 묵었던 도로 옆 알베르게 바에 들어가 아침 커피를 마셨다.

 까리온에 가는 날부터 구름이 정말 예쁘다. 길은 좀 심심하지만 구름 보는 재미로 걷는 것 같다. 부모님과 구름이 어떤 모양인지 얘기도 나누고.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마을로 들어가니 꽃을 잘 가꾼 집들이 많았다. 꽃을 좋아하는 부모님은 어쩜 이렇게도 꽃을 잘 가꾸었는지 궁금해하신다.

 마을을 빠져나가고 어디서 화살표를 잘못 보았는지 도로 옆길을 따라갔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구글 지도를 살펴보았는데 일단 방향은 맞았다. 아무래도 자전거 순례길로 들어온 것이 아닌 가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횡단보도를 만나 산 니콜라스 델 레알 까미노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래된 성당 앞 바에 들어가 쉬면서 지도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길 옆을 따라 걷는 건 그만큼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산 니콜라스 델 레알 까미노의 오비스포 성당>

 마을을 빠져나가며 화살표를 잘 살피고 다른 순례자들을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길을 찾은 것 같았다. 길을 걸으니 이제부터 레온주에 들어섰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곧 메세타의 끝을 알리는 대도시, 레온에 도착할 것이다.

 길을 걷다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구아나처럼 보이는 도마뱀과 동물이 있었다. 아니, 길 가에 이렇게 이구아나가 있다니. 신기했다.

 사아군에 들어가기 전 다리의 성모 경당에 도착했다.

 이곳 다리에서 사진을 찍어준 프랑스 할아버지는 종종 길에서 만났는데 나는 그동안 그가 영국인인 줄 알았다. 길가에 주저앉아 있는 그에게 엄마는 당이 떨어진 줄 알고 사탕을 주었던 것을 계기로 몇 마디 나누면서 함께 걸었는데 그는 우리 아빠가 하루에 사진을 얼마나 찍는지 궁금해했다. 늘 아빠를 만나면 사진을 계속 찍고 있다면서. 나는 하루에 백장도 넘게 찍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그가 건네준 카메라는 핸드폰이 아니라 오래돼 보이는 디지털카메라였다. 사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한 가족이 순례길을 걸으러 왔으니 외국 할아버지 눈에는 신기해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곳에서 좀 쉬다가 걷겠다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사아군은 작은 순례자 마을은 아니었다. 철도도 있고 성당도 꽤 많다고 들었다. 마을 입구의 순례자 숙소에 들어가서 증명서를 받았다. 증명서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기념품이랄까. 증명서 통도 구매해서 소중히 배낭에 넣었다.

순례자 숙소 근처에 산 후안 성당이 있었는데 무슨 축제 준비로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알베르게까지는 꽤 걸어가야 했다. 가는 길목에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카페가 있어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피자와 토스트, 빵과 수박까지 든든히 챙겨 먹었다. 바로 옆 슈퍼에서 납작 복숭아를 팔았던 기억이 나서 가보니 역시 내 사랑 납작 복숭아가 있어서 몇 개 구입했다.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길목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역시 나름 도시이지만 순례자들이 지역 활성화에 주는 영향이 큰 것 같다.

 오늘 묵을 곳은 SANTA CRUZE 라는 곳인데 수녀원에서 운영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2인실도 있고 도미토리도 있어서 이곳으로 예약했다. 3인실은 없다고 해서 부모님은 2인실에 묵고 나는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씻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나도 처음 와보는 곳이라 이번에 올 때 챙겨 왔던 홍사영 신부님이 쓰신 "산티아고 길의 마을과 성당"을 보면서 구글 지도로 성당을 찾아봤다.

  가까운 성당을 찾아가니 까리온에서 봤던 전시가 이곳에서도 하고 있었다. 도시의 성당에서 연작 전시를 하는 듯했다. 사아군에서는 두 곳에서 진행했는데 한 곳에서 티켓을 사면 자동적으로 두 곳 다 볼 수 있었다. 사아군 전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주제인 듯했다. 부르고스에서도 전시가 있었다고 하니 아마 예수님의 탄생이지 않았을까? 부르고스 - 까리온 - 사아군 이렇게 전시가 이어지는 것 같다. 또 다른 곳은 언덕 위에 있는 성당이었는데 마치 중세 수도원을 보는 것 같았다.

 알베르게에는 작은 성당도 있어서 부모님과 미사를 봤다. 신부님은 아이패드로 성가를 틀어주시면서 미사를 진행하셨는데 꽤 색달랐다. 이곳에서는 성경 구절을 하나씩 뽑아 가질 수 있었는데 까리온 성당에서는 순례길을 별빛에 비유했다면 이곳은 작은 촛불로 비유하셨던 것 같다.

 오늘은 길에서도 알베르게에서도 한국분들을 꽤 만났다. 역시 사아군은 역사적으로도 순례길에서도 의미가 있는 마을인 것 같다.

 이제 내일이면 내가 좋아하는 엘 부르고 라네로에 도착한다. 내일은 꼭 일몰을 보러 가야겠다.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좋고 구름이 좀 있어도 노을이 정말 멋지니까 기대된다.

 어느덧 한국을 떠난 지도 25일째다.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곧 레온에 도착하면 순례길의 3분의 2를 마치는 셈이다. 우린 아주 잘 해내고 있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걸으면 문제없을 것 같다.



*숙소 정보: ALBERGUE DE LA SANTA CRUZE

 2인실과 도미토리가 있다. 2인실에는 욕실이 포함되어 있다. 도미토리에도 방마다 욕실이 있다. 시설이 낡았어도 꽤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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