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치영 Apr 29. 2024

버스 정류장이 아닌 것 같지만 맞습니다.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28

 2022년 6월 6일

 걷기 24일 차: 레온 -> 산 미구엘 델 까미노 -> 산 마틴 델 까미노

 하루 쉬다 걷는 날은 뭔가 새로운 기분이다. 다시 리셋된 기분이랄까.

 산 이시도르 성당을 지나 산 마르코스 광장으로 갔다.

  역시나 큰 도심을 빠져나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건널목도 많고 신호등도 많았다. 이럴 땐 화살표를 놓칠 위험이 많아 지도를 보면서 걷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인도를 따라 걸으면 곧 라 비르헨 델 카미노의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옛날식과 현대식의 조화가 아름다운 성당이다. 성당 문이 열려있어 들어갔다가 신부님을 만나 세요도 찍을 수 있었다. 세요는 성당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서 예뻤다. 엄마가 초 봉헌을 하고 잠시 기도를 올린 후 출발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하루 쉬어서 그런지 조금 힘들어서 배낭에서 바나나와 초코바를 꺼내 먹으며 걸었다.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 초입 바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이곳에서 쉬고 있으니 아까 길에서 마주친 미국에서 온 존 아저씨가 들어왔다. 화물비행기 파일럿을 했기에 한국에도 꽤 왔었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  미소가 환해서 정말 멋지다고 얘기해줬다. 며칠 전부터 길에서 안면을 익히긴 했으나 대화를 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가족끼리 다니는 경우가 많지는 않으니 우리가 눈에 띄는 것 같다. 대부분 모녀나 부녀, 모자가 많기 때문이다.

<성당 종탑에 둥지를 지은 새들>

 오늘은 마을을 많이 만나는 날이라 좋다. 곧 산 미구엘 델 카미노에 도착했다. 어제 푹 쉬긴 했어도 엄마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길은 도로 옆길을 따라 걷는 것이라 별로 좋은 길도 아니었고 말이다. 혼자 왔을 때 들렸던 바에 들어가서 음료를 사고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드렸다. 벽면 가득 사람들이 해놓은 낙서를 보니 이곳이 친절하다고 적혀있었다. 역시나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히 우리를 대해줬다. 택시가 전화를 받지 않자 버스 시간을 검색하시더니 버스가 바로 도착할 예정이라며 밖으로 같이 나가 위치를 알려주셨다. 바로 바 앞 반대편에 버스가 온다고 했는데 정류소 표시도 버스 이정표도 없었다. 일단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길을 건너 잠시 버스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전에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 버스는 안 타려고 했는데. 정말 오긴 오는건가?라고 생각하던 때 신기하게도 알사 버스가 우리 앞에 멈췄다. 분명 갖고 다니는 지도 책에도 어플에도 버스는 없는 동네라고 적혀있었는데... 역시 주민분들에게 물어보는 게 최고다. 순례길에서 버스를 다 타보다니.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 덕분에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산 마틴 델 카미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득 이번 순례길의 까미노 천사를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안부를 묻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그 모든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지.

 이곳은 예전에도 묵었던 곳이었는데 그 때 기억이 좋아서 이번에도 예약을 했다. 도착하니 꽤 반갑고 정겨웠다. 체크인을 하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 당시 저녁을 먹으며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굉장히 좋아하셨다.

오늘 저녁도 이곳에서 먹을 예정이라 기대가 됐다.

 수영장에 물도 있고 마당에 꽃도 많이 피었다. 터줏대감인 고양이도 여전했다. 늘 저 의자에 잘 앉아있었지.

 오늘 저녁은 22명이 먹어서 식탁이 꽉 찼다. 식사로는 샐러드, 빠에야, 치킨 요리가 나왔다. 우리는 이곳에 머무는 한국 분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먹었다. 부모님도 오랜만에 한국분들을 만나서 반가워하셨다. 아빠는 저녁을 먹고 난 뒤에 그분들과 마을을 둘러본다고 함께 나갔다.

 순례길을 걷고 멋진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알베르게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순례길의 일부이고 기쁨, 즐거움이니까. 아빠가 다른 사람들과 나가서 시간을 보내신다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곧 해가 지는데 돌아오지 않아 걱정을 했지만 해가 다 떨어지기 직전 다함께 숙소로 오셨다. 아빠의 이런 모습을 보니 너무 호텔과 3인실만 고집했나 싶기도 했다.



*숙소 정보: ALBERGUE VIEIRA

 깔끔하고 푸근한 가정집 느낌의 알베르게이다. 저녁 식사도 맛있다. 그래도 다음에 온다면 바로 옆에 새로 생긴 알베르게에서도 묵어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쉼표가 필요한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