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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영 Apr 03. 2024

타국에서 느끼는 익숙함

70대 부모님과 산티아고 걷기 17

 2022년 5월 26일

 걷기 13일 차: 아헤스 -> 부르고스

 식당에서 짐을 꾸리고 아침을 먹으려던 찰나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혹시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의도치 않게 가장 빨리 출발하게 됐다. 구름이 좀 낀 날씨였지만 비가 내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걷기 좋은 하루.

 아타푸에르카는 내 기억보다 훨씬 발전하고 마을이 커진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고대 유적지가 있으니 순례길 말고 관광지로도 더욱 유명해진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타푸에르카를 지나자마자 언덕길이 나온다. 귀여운 양 떼를 지났을 때 한국분 2분을 만났다. 어제 아타푸에르카 공립 알베르게서 4명이 묵었다고. 아무래도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예약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공립에 자리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동키 서비스 걱정을 하시길래 동키 기사님께 문자로 상황을 설명하고 동키가 잘 예약됐음을 알려드렸다.

 

<알베르게 광고판 버스>

 언덕 아래 마을 바에서 잠시 쉬었다. 비는 오지 않지만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다. 마을 초입의 바에서 바람을 피해 잠시 쉬었다.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길은 공항을 빙 돌아서 공원을 한참 걸어가야 한다. 이 마을 이후 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쉴 곳도 없어 힘들었다.

<바람이 강한 곳엔 언제나 풍력 발전기가 있다.>
<굴뚝 연기도 구름처럼. 아빠 작품>

 심심한 길이지만 그 와중에 아빠는 순간 포착을 하며 사진을 찍어 멋진 작품들을 남겼다.

 두어 번을 더 쉰 끝에 공원을 거의 다 빠져나왔다. 공원에는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도시에 들어가는 길은 역시나 쉽지 않았는데 아빠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잘 가꾸어진 정원 나무였다. 더위에 지쳐 힘든 길이 덕분에 심심하지 않고 보는 재미가 있었다.

 화살표를 찾아 걷고 걷다 보니 산타 마리아 성문이 보였다. 부르고스 대성당 광장에 다다른 것이다.

 부모님은 이렇게 큰 대성당은 처음 보는 것이라 그 웅장함에 놀라셨다.

 드디어 도착했다. 오늘은 가장 오래 걸은 날이다. 24km를 7시간 만에 완주했다. 순례길에 오른 후 처음으로 내일 이곳에서 하루 쉰다. 오늘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지만 하루 푹 쉬고 내일 부르고스 대성당도 둘러볼 예정이다. 그래서 성당 바로 옆에 숙소를 잡았다.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점심을 먹기로 하고 어제 우르테가에서 먹은 피자가 기억나 광장 근처 피자집으로 갔다. 화덕에서 구워주는 피자로 성공적이었다.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정말 방에서 바라보는 대성당의 뷰가 아름다웠다.

 호텔에 묵으면 침대도 좋고 욕조도 좋지만 빨래가 안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래도 워낙 빨래방이 잘 되어 있으니 부모님 쉬시는 동안 빨래방에 다녀오다가 보르다에서부터 만난 독일 부부들을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나를 부르며 환하게 웃는다. 하룻밤 산장에서의 인연이 2주간이나 이어져오다니. 그들은 부르고스에서 이번 순례를 마친다고 했다. 나만 만나서 꽤 아쉬웠지만 부모님에게도 인사를 전하겠다며 헤어졌다.

 오늘 미사가 있다고 하길래 미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 도시를 둘러보는데 벽화가 꽤 많았다. 보기만 해도 신기한 벽화를 구경하며 걸었다. 성당 뒤쪽 골목을 걸었다.

 미사를 보기 전 배고파서 타파스를 먹으러 갔다. 오늘 저녁은 나름 유명하다는 곳에서 먹을 생각이기에 미리 허기를 달래줄 필요가 있었다. 스페인의 저녁은 우리나라보다 아니 순례자에게는 너무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화이트 와인과 함께 여러 가지 타파스를 주문했다.

  가볍게 배를 채우고 성당으로 갔다. 대성당 옆쪽 문으로 들어가야 미사보는 공간이 나왔다. 미사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이 추천해 준 식당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독일 부부를 만났다. 오늘만 우연히 2번이나 마주쳤다. 이 정도면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 부모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합쳤다. 꽤 인기가 많은 곳인지 사람들도 북적였다. 직원의 추천으로 주문을 마치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그들은 내일까지 이곳에서 쉬면서 부르고스를 구경하고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서로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나 사진을 찍고 산티아고에 무사히 도착하라며 인사를 하고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식사를 마친 후 부모님은 쉬러 가셨고 나는 야경이 예쁘다는 부르고스 성벽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도시를 배경으로 지는 해를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여름이 다가오는 유럽의 해는 길었고 높은 성벽을 다 올라가기엔 너무 힘이 들었다.

 불이 들어온 대성당은 아름다웠고 숙소에서 보이는 밤의 성당도 예뻤다. 부르고스 대성당은 큰 만큼 내일 여유 있게 천천히 둘러보려고 마음먹었다.


 4년 전에 한 번 와봤다고 오늘은 길도 헤매지 않고 대성당까지 잘 찾아왔다. 그리고 도시 곳곳이 기억나서인지 지도를 보지 않고도 대성당 주변은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내가 먼 타국의 한 도시에서 익숙함을 느끼게 되다니. 그만큼 이곳이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그리고 그게 이 길의 매력이고. 다만 2년 간의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아 자연은 스스로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지만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관리가 안된 느낌이 들었다. 그것 또한 이 길의 매력일 테다.

 내일은 온전히 부르고스에서만 지내는 날이니까 오늘 푹 쉬고 내일 잘 구경해 보자. 그리고 이후 일정을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 숙소 정보: HOTEL MESON DEL CID

 전망이 좋은 숙소. 그게 다했다. 대성당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과 전망이 가장 좋았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조식도 좋았다. 낡은 호텔이긴 했으나 위치와 전망이 묵었던 숙소 중에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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