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트라 토박이, 택시 운전사(신트라, 포르투갈(3))

by 고잉웰제이드



산 중턱에 있는 페나성을 둘러보니, 왜 과거 왕과 귀족들이 여름마다 신트라로 휴양을 왔을지 납득이 된다. 풍경이 아름답고, 시원함을 넘어 공기가 차갑기도 해서 여름 더위를 피하기에 딱인 곳이다. 페나성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2시 30분. 아직 오후 밖에 안되었지만, 한인 민박집에서 아침 메뉴로 차려주신 삼계탕 에너지를 벌써 다 소진했다. 페나성에서 헤갈레이아 별장으로 이동하는 일정을 앞두고 있는데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다. 이미 단화를 신고 페나성까지 트레킹을 한 후였기 때문이다.


마침 페나성을 뒤로 한채 바깥으로 나오니, 'transport?'를 말하고 있는 뚝뚝 기사들이 여럿 있다. 한 여자 운전사와 눈이 마주쳐 헤갈레리아 별장까지 갈 수 있는지 물었더니, 10유로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좋아, 나 안 그래도 뚝뚝 한 번은 타보고 싶었어.'


그녀는 저 쪽에 자신의 차를 주차해 놨다며 나를 안내했다. 멋진 연보라색 클래식 카가 서있었다.

"이런 보라색 차를 탈 일이 얼마나 있겠어! 내가 차랑 같이 사진 찍어줄게."

말 한마디에서 그녀의 긍정적인 성격과 기운이 듬뿍 느껴졌다. 이미 1만보를 넘게 걸어 지친 나의 에너지가 조금씩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나 오늘 페나성 가는 길을 헤매서 너무 많이 걸었어."

헤갈레이아 별장까지 차를 타고 15분 정도 걸리는 길에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신트라에 처음 와보니 어떠냐는 그녀의 질문에 너무 좋고 또 오고 싶다는 이야기 후에, 길을 헤맨 일을 얘기했다.

"보통 걸어서 가면 45분 정도 걸리는데, 1시간 정도 걸렸구나. 아마 너 건강해졌을 거야."

어찌 보면 나의 투정 같은 이야기에 그녀는 긍정으로 받아쳤다.


이어 페나성 위에는 춥다고 했더니 '맞아, 위쪽은 공기가 좀 프레시(fresh) 해'라고 답한다.

역시 생각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한 끗 차이로 달라지나 보다.



차 1.5대 정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 폭의 길이라, 페나성에서 내려가는 차와 아래에서 페나성으로 올라가는 차들이 마주치면 잠시 길이 막히는 구간도 있었다. 길이 막혀 잠시 차가 정차해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한 사람이 우리 차로 다가와 운전사인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녀의 친구다. 한바탕 웃는다.

길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여행객들이 그녀의 차를 보고, '차가 너무 멋있는데 사진 좀 찍어도 돼요?' 묻는다. 그러면 그녀는 '얼마든지요'라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차의 속도를 늦춰준다.

"항상 이래. 내 차가 멋있다면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거든."

그녀는 나에게 설명을 덧붙인다. 본인은 신트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인데 신트라는 정말 아름다운 동네라며, 시간 나면 관광지 말고 동네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둘러보고 가라고 한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나는 그녀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나는 관광지에서 살짝 벗어나 현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가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지역 사람들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사람들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말이 있는데, 하루를 시작하고 각자의 생활을 위한 일을 하고 식사를 하는 큰 틀에서는 비슷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새는 각각 다르다. 일을 하러 갈 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 일터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그리고 어떤 접시에 어떤 음식을 담아 하루 마무리하는 저녁 식사를 하는지 엿보는 일은 새롭고 즐겁다.



그녀는 운전하는 내내 나에게 들릴만한 장소들을 알려주었고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지도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리스본 → 신트라 →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호카곶 → 그리고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호카곶에서 까스까이스라는 곳에 들리기도 일정을 변경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전에 민박집 사장님께서 까스까이스라는 곳을 들렀다 오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는데, 택시 운전사 그녀도 같은 말을 했다. 그렇다면 안 갈 수가 있나!


난로 옆에 가까이 가면 따뜻함이 느껴지듯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신기하게 어떤 사람 곁에 가면 그 사람의 온기가 나에게까지 느껴질 때가 있다. 논리적인 사람 근처에 가면 나까지 이성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가진 기운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단 15분이었지만, 그녀에게서 긍정적인 기운을 듬뿍 전달받고 택시에서 내렸다. 다시 그다음 여행지를 활기 있게 맞이할 힘을 얻었다.




* 추가 이야기

호카곶은 이베리아 반도 최서단으로 우리나라 가장 동쪽에 있는 간절곶과 자매협약도 맺은 곳이다. 간절곶은 정동진보다 5분 빨리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에 정동진에서 일출을 많이 보는데, 포르투갈 사람들은 연말에 호카곶에서 일몰을 많이 본다고 한다.

호카곶에 가보니,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진다. 그 수평선 바다를 보고 있자니, 과거 사람들이 왜 지구가 네모나서 끝까지 가면 뚝 떨어질 것이라고 믿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동해를 보는 풍경과는 또 달리, 호카곶은 정말 끝까지 가다보니 절벽을 만나 추락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까스까이스는 최근 들어, 포르투갈 사람들이 은퇴하고 살고 싶어하는 동네라고 한다. 해변이 주는 평화로움이 가득한 곳이다. 기회가 된다면 들러보길 추천한다.


화,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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