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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Jan 18. 2024

안녕, 반가워 무디

겁 많은 유기견 임시보호 일기 2: 두근대는 무디 맞이 준비



  "아마 저녁쯤 도착할 것 같아요. 출발하면서 연락드릴게요."

  보호소 대표님의 문자가 왔다. 저녁쯤에 도착한다고 하니, 오후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몸이 무겁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열정 가득했던 몇 달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의 나를 겪고 있었다. 설거지가 쌓이는 것도 싫고 화장대 앞에 머리카락이 가득한 것도 싫었는데, 지금은 설거지도 저녁으로 미루고 화장대 앞 머리카락도 그냥 두고 싶었다. '이틀 치 모아서 한 번에 하면 되잖아'하는 마음이 훨씬 우세했다. 

  그러던 내가 무디에게 필요한 용품을 사러 용품점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설레서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은 다리에게 뛰어가라고 이미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달려가고 있는 나를 보고 그제야 머리는 뒤늦게 '내가 설레는구나'하고 알아차렸다. 심지어 추운 날씨를 신경 쓰기보다, 햇빛이 건물 사이로 줄기처럼 비쳐오는 것에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임시보호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은 것을 구비하기보다는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구비하기로 했다. 강아지를 집에서 케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많았지만, 좋은 양육자가 나타나 보내게 될 것을 대비해 집안에 흔적을 많이 남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나는 현재 한마디로 백수다. 임시보호 중 대부분의 비용은 남편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남편에게도 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마침 집 근처에 대형 반려동물 용품점이 있다. 강아지를 맞이하는 첫날, 무조건 필요한 것들 리스트를 생각해 갔다. 의식주에서 '의'는 제외하더라도 우선 '식'과 '주'에 해당하는 것들이 필요했다. 자야 하니까 방석, 혼자만의 공간에서 쉬기도 하고 이동도 해야 하니까 켄넬, 먹어야 하니까 사료와 간식, 물그릇과 밥그릇, 그리고 새끼 강아지여서 이가 간지러울 테니 마구 씹어도 되는 장난감 몇 개, 배변해야 하니 배변패드. 이렇게 머릿속으로 정리해 갔고, 동물보호단체에서 추천하는 퍼피용 사료 브랜드를 저장해 갔다. 

  용품점에 들어서, 한 두어 바퀴를 돌며 전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남편과 함께 고르러 왔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며, 남편에게 물그릇과 밥그릇 세 가지 종류를 사진 찍어서 보냈다. '어떤 걸로 사면 좋을까?'하고. 사진 찍는 '찰칵' 소리에 '사진 찍으시면 안 돼요'라는 사장님의 목소리가 카운터 쪽에서 들려왔다. 높은 선반들로 사장님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도 '어떤 거 사면 좋을지 남편한테 물어보려고 찍었어요. 고르고 나서 삭제할게요'라고 목소리를 보냈다.      


  "어떤 목적으로 쓰시는지 알았으니까 괜찮아요."     

  사장님은 물건별 가격이 나오게 SNS에 포스팅하는 사람들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한 바퀴 더 둘러보고 마음속으로 어떤 것들을 살 지 정해놓았고, 이제 한 번에 모두 물건을 담기만 하면 되었다. 카트를 가지러 용품점 입구로 갔는데, 카트조차 사랑스러웠다. 일반 대형마트에 가면 카트에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자리를 펴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반려동물을 태울 수 있는 칸이 카트에 같이 붙어 있었다. 속으로 '나도 나중에 무디랑 같이 쇼핑하러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무디가 직접 마음에 드는 장난감도 고르고 간식도 고르면 좋겠다 싶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사료를 비롯해 필요한 것들을 카트에 담았다.    


  몇 가지는 사장님의 추천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도움을 요청했다. 

  "켄넬 어떤 거 사면 좋을지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내 물음에 사장님께선 곧장 다가오셨고, 켄넬은 너무 큰 것보다는 강아지에게 딱 맞는 사이즈를 고르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사장님께 강아지 사진도 보여드렸다. 사장님은 강아지가 지금 3kg인데 믹스견이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7kg 정도까지는 클 것 같다며, 클 것을 대비한 사이즈의 켄넬을 추천해 주었다. (이때는 몰랐지만, 무디는 우리 집에 온 지 2개월 만에 7kg를 돌파했다.)     


  켄넬, 방석, 배변패드 100매, 장난감 공 세트, 터그용 장난감, 물그릇, 밥그릇, 간식 몇 가지, 사료, 샴푸를 구매하니 가성비 좋지만 적당히 좋은 물건들로 고르다 보니 금액이 꽤 나왔다. 남편은 이 날 오전에 필요한 것들을 사라고 우리 집 공용 카드에 돈을 추가 입금해 두었는데, 아마 이 정도 금액은 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켄넬에 구매한 것들을 다 넣어 들고 가려고 보니 무게가 꽤 되었다. 체감상 10kg은 되는 것 같았다. 용품점에 오는 길은 가볍게 달려왔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몇 번을 쉬어 갔다. 왼팔 오른팔 바꿔가며 들었다.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설렜다.      


  저녁쯤 보호소 대표님에게 문자가 왔다. '도착했습니다.' 나는 집 앞으로 내려갔고, 대표님께서 트렁크에서 무디가 들어 있는 켄넬을 조심히 내려주셨다. 

  "겁이 조금 있는 편이에요. 오늘은 가서 먼저 다가가지 마시고, 가만히 쉬게 해 보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무디야, 같이 집에 가자.'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디와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전혀 상상조차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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