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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Jan 18. 2024

나는 이 집에 납치된 걸까

겁 많은 유기견 임시보호 일기 3: 무디가 우리 집에 온 첫날



  무디가 들어있는 켄넬을 집으로 들고 올라왔다. 집에 와서 켄넬 문을 열어주고 멀리 떨어져 지켜봤는데 무디는 무서운지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켄넬에 뚫린 구멍들 사이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철퍼덕'하고 주저앉았다.      

  김제에서 출발해 인천을 들렸다가 도착했으니, 장시간 차를 탄 것만으로도 힘들 것 같았다. 목마르고 배도 고플 것 같아 사료와 물을 바로 앞에 놓아주었는데, 사료를 쳐다보기만 할 뿐 입에 대지 않았다. 건강수첩을 받아보니, 종합예방접종 1차와 코로나 장염, 광견병 주사를 맞고 왔다고 되어 있었다. 내가 코로나 백신을 맞았던 때가 떠올랐다. 사람도 병원에서 접종하고 오면 진이 빠지는데 무디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디에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피곤했는지 무디는 켄넬 안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무디는 일어나서 다시 두리번거리더니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다행히 밥을 먹기 시작했고, 사료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잘 먹어 마음이 놓였다.      


  무디가 켄넬에서 나와 방석에서 편히 잠들기를 바라며,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해 봤지만 무디는 오히려 더 뒷걸음질을 칠 뿐이었다. '그래, 오늘은 네가 자고 싶은 데서 자는 수밖에'하고 서재로 쓰는 방구석 어두운 곳에 켄넬을 옮겨 주었더니 무디가 밖으로 나왔다. 온 집안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녔다. 배변패드를 집안 곳곳에 깔아 두었는데 패드에 배변까지 보고 집안 탐색을 이어갔다. 지금 와서 그때를 떠올리면, 무디는 숨을 공간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무디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더니 침대 밑 공간을 찾아냈다. 그리고는 침대 밑에 들어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끌어내지 않고 그냥 두었다. 무디는 예상보다 더 겁이 많았다. 사람의 작은 움직임에도 화들짝 놀랐고, 사람이랑 눈이 마주치면 후다닥 침대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보호소에서 지내며 올라온 사진을 봤을 때도, 무디는 사람을 반기기보다는 겁이 많은 아이인 걸 알 수는 있었지만 내 예상보다 더 겁이 많아 보였다, 다시 무디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무디는 뜬장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네 마리의 개가 무디 세상에서 전부였을 것이고, 모견과 자견도 없었기에 사회화 시기에 엄마에게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보호소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으니, 사람보다는 개 친구들이 훨씬 편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을 뒤로한 채 우리 집으로 홀로 보내졌다. 무디는 '한 공간에서 저렇게 커다란 거인 두 명이랑 지내야 한다니, 괜찮을까?'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간식을 미끼로 주고 나를 또다시 잡아가서 어떻게 하지는 않을까"     

  "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 거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작게 되뇌며 침대 밑에서 뜬 눈으로 밥을 지새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병원에서 파보 바이러스를 치료받을 때와 예방접종 맞을 때 만난 사람들이 손으로 무디를 잡아서 무언가를 하려 했을 테니, 사람 손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생겼을 수도 있고, 무디는 그 사람들이 무디 아픈 병을 치료해 주려는 좋은 의도였다는 것도 알 리 없으니 사람이 무서운 게 당연하겠구나, 생각하며 나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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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뜬장: 바닥까지 철조망을 엮어 배설물이 그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든 장 

  -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배설물 처리 등 관리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동물을 집단 사육하는 개 농장, 번식장 등에서 주로 사용한다.      

  -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남기자의 체헐리즘 기사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개농장 뜬장'에 갇혀...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봤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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