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행형 Jan 18. 2024

무디의 이중생활 시작

겁 많은 유기견 임시보호 일기 4: 임시보호 3일 차 아침



  강아지와 친해지려면 강아지가 자는 곳에 이불 깔고 누워 자는 게 좋다는 강형욱 훈련사의 영상을 보고 거실에 이불을 깔았다. 그래서 어떤 분은 처음 집에 온 강아지가 적응을 못하고 신발장 근처에서 자서 현관 쪽에 이불을 깔고 며칠을 잤다는 후기도 본 적 있다. 남편과 나는 당직을 서듯 번갈아가면서 바닥에서 자기 시작했는데, 계획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무디랑 친해지고 싶어 자연스럽게 우리 집 당직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무디가 온 지 한 달쯤 됐을 때 우리 둘 다 허리가 쑤시고 등이 배기기 시작해 잠은 편하게 자자며 당직을 그만두었다.


  왜인지 아이를 낳고 부모가 100일 동안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좀비가 되는 기간이 있다고 했는데, 알 것 같다. 매일 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무디 덕에 며칠 밤 동안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나는 한 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깊게 자는 편인데, 무디가 오고 나서는 무디가 걱정돼 예민해졌고 몇 번씩 새벽에 깨곤 했다.

  무디가 온 첫날과 둘째 날은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침대 밑에 구부정하게 엎드려 있는 무디가 심히 신경 쓰였다. 그 다음날은 무디가 침대 밑에서 서랍장 밑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좁은 공간 탓에 무디가 움직이다가 머리를 서랍장에 쿵쿵 찧는 소리가 들렸다. 첫날과 둘째 날 밤에는 하울링을 했고, ‘친구들이 아무래도 그립겠지’ 생각했다. 셋째 날부터는 하울링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 떠올려도 하울링 하던 무디의 모습은 짠하다. 침대 밑에서 미동 없이 하루 종일 있다가 사람들 자는 밤에만 집을 돌아다니며 하울링 하던 모습을 보며 우리 집에 얼른 적응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셋째 날 아침, 내가 당직을 선 날이었는데, 아직 해가 안 드는 어두운 아침, 어떤 기운을 느껴 잠에서 깼다. 눈만 떴는데 크고 작은 검은 덩어리들이 거실 바닥에 마구 흩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이 확 깨서 나도 모르게 ‘헉’하는 소리가 나왔다. 무디도 나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무디는 도망도 안 가고 그저 얼음이 되어 있었다. 어두워 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설마 무디가 똥을 싸고 본인의 똥을 가지고 논 걸까?’했다. 검은 덩어리들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똥이었기 때문이다. 불을 켜서 보니, 화분에 들어있던 흙이었다. 사람 키 절반만 한 화분이 하나 있는데, 화분 안에 있는 흙을 퍼서 가지고 놀고 식물 잎도 깨물며 신나게 뛰어 고 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보니 안심이 되어 웃음이 났다. 한창 에너지 많을 새끼 강아지가 침대 구석에만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는데, 사람들이 자고 있는 밤에 안전하다 느꼈는지 밤만큼은 집 곳곳이 무디의 놀이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무디의 낮과 밤이 다른 이중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잠들면 ‘파티다!’하고 서랍장 밑에서 나와 온갖 놀이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깡충깡충 토끼처럼 가볍게 뛰던 무디가 이제는 ‘다다다’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얼른 반려견 매트와 러그를 구입했다. 그리고 이제 밖에 나가서 저렇게 ‘다다다’ 뛰면서 좋아할 무디를 떠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이 집에 납치된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