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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행형 Jan 18. 2024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다.

겁 많은 유기견 임시보호 일기 8: 무디의 2~3주 차 생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다. 무디는 손에 있는 간식도 줄곧 잘 먹었고, 켄넬에서 나와 사람을 따라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아예 켄넬에서 나오질 않았다. 몸이 커진 무디에게 켄넬은 불편해 보였다. 켄넬 안에서 몸을 돌돌 말아 누워 있는 무디를 보면,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하겠지’ 생각했다. 켄넬이 이동할 때 사용하기엔 좋지만, 집에서 잠을 자는 하우스로 사용하기엔 좀 아쉬운 크기였다.

  무디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3kg이라고 해, 7~8kg까지 커서도 사용할 수 있는 조금 큰 크기의 켄넬을 구입했다. 마치 아기 옷을 한 치수 크게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무디는 밥을 잘 먹어준 덕분에 두 달 만에 7kg이 되었다. 건강한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무디에게 켄넬은 금방 작아졌다. 켄넬에 들어가면 발을 뻗고 자지 못했고, 켄넬에 들어가서도 넓게 눕는 게 아니라, 가장 끄트머리에 몸을 구겨 넣어놓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해 보였다. 켄넬에서 잠자고 있는 무디의 모습을 표현하자면, 기차나 버스에서 머리 제대로 기댈 곳 없어 꾸벅꾸벅 졸면서 가는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무디는 하루 종일 단 한 번도 켄넬에서 나오지 않은 날도 꽤 있었다.      


  켄넬 안에서 무디가 뒷걸음질 치지 않고, 몸의 방향이 앞으로 쏠리게끔 바뀌어 그것만으로 기뻤는데 어느 순간 무디는 다시 뒷걸음질을 쳤다. 일부러 켄넬 안도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고, 켄넬 안으로 손을 넣지도 않았는데 무디가 왜 그러는지 도통 알 수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 힘이 빠졌다.   

   

  특히 겁이 많은 강아지는 사람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루틴을 가지고 매일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어 해가 들어오게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했고, 청소기를 돌렸다. 커피를 내리고 tv를 켜 음악을 튼다. 그런데 이런 나의 행동이 무디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복잡했다.  

  무디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예민했기 때문에 일부러 청소기를 돌렸다. 무디는 간식을 주려고 간식 봉지를 부스럭대면 무서워 도망갔다. 내가 알던 강아지는 간식 봉지 부스럭 대는 소리만 들어도 좋아했는데 무디는 아니었다. 남편이 무의식적으로 남편도 모르게 발가락을 까딱 거린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도망갔다. 무디는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는 특히 더 무서워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내리는데 계속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물을 내린 후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일수도 있다.   


  한 번은 로봇청소기 구입을 고민한 적 있다.

  “로봇청소기 돌리면 무디가 기겁을 하겠지?”

  남편은 로봇청소기를 살지 말지 고민하자마자 바로 무디를 떠올렸다.

  “그런데 무디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 1순위가 로봇청소기가 되면 우리가 2순위가 될 수도 있으니까 좋은 것 같기도 한데? 로봇청소기를 1순위로 만들어버리고, 우리를 2순위로 밀려나게 하자.”

  장난이었지만 사실이 조금 섞이기도 했다. 무디가 무서워하는 로봇청소기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보호자가 되는 상상을 잠깐 했다. 아무래도 무디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사람이었고, 우리 집에서는 나와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좌) 하도 뒷걸음질을 쳐서 앞으로 밀린 방석 (우) 불편하게 자고 있는 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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