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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09. 2024

다시 걸어보는 길


 아까시아 꽃이 활짝 펴서 벌들이 바쁜 시절이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 앞에 보이는 산들은 초록 색깔이 짙어져 가는데, 그중에서 연두색이 예쁘다. 연두색도 곧 초록색으로 가겠지만, 자연이 만들어 낸 색깔의 조화가 너무 신기하고 오묘하다. 인간이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보이는 것처럼 만들 수 없는 색깔이다. 이것이 자연인 것 같다.


바빠진 농부들은 고추 묘 내기에 시간이 바빠 분주하데, 한가한 이웃은 다시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몸의 기능이 떨어진 곳이 있어도 다시 예전처럼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가는 것이 더 편한 시절이다. 그래도 아직 걷는 것은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까지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무겁지는 않던 배낭이 무거운 기분이다. 무거운 느낌을 주는 배낭과는 달리 필요한 짐을 챙기는 것은 더 간결해졌다. 걷기에 필요한 것이 더 적어지고, 자주 짐을 꾸려 가져갈 것이 쉽게 정해 진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일어나니까 걷고 싶은 기분이 난다. 늘 그랬듯이 아침 출발이다.


출발지에 가기 위해서 버스 타고 여러 번 대기하면서 다시 타고 갔다. 일단 여행의 시작이니까 기분도 올라가고 기대가 앞선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걷는 것이라 걷지 못할 이유가 생길까 봐 마음이 쓰인다. 

내일 아침에 시작할 땅끝마을에 도착해서 바다를 보니까 걷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번에 걸으면서 이곳까지 와 걸으면서 신고 온 신발을 놓고 간 곳을 가 봤다.

신발은 그대로 있으리라 기대도 안 했지만,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었다. 바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위에 이끼가 무성히 자라는 시절이다. 


다음날은 습관처럼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데,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바닷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음은 예전과 달리 다리가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도 세월의 무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걷는데 익숙하려고 마음을 써 본다. 

전보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고려하고 가능한 다른 몸의 기능을 잘 활용하려는 마음이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힘든 마음이 앞서고 그냥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초심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겠다는 마음이다. 


길은 산티아고의 길처럼 끝없는 들판의 직선 길이면서 걸으면서 다음에 어떤 길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길이길 바라지만, 그런 바람이 그런 마음으로 그쳐야 하는 길이다.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면 다시 내려가는 길이 나오면 걱정되는 마음으로 걷는다.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 가야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올라서 다리가 힘들어 다시 어느 정도 걸으면 걷는 길에 적응할 쯤에 다시 오르막을 오르면 다리의 힘이 배가 드는 느낌이다. 이렇게 오르막 내리막의 걷기 피곤한 길이 연속이고, 힘이 많이 드는 길을 걸었다. 편안하고 예측 가능한 길을 걸으면서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길이 그렇게 많지 않은 길이다. 

머리 속에 예상한 길은 생각지 못하는 방향으로 길이 만들어지는 것은 평탄한 국토가 아니라 굴곡이 많은 지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는 길은 같은 길이 아니라, 모두가 새로운 곳이라는 것을 느끼며 새로운 것을 보는 즐거움을 만났다.


이른 새벽에 걷는 길에는 거미줄이 걷으면서 걷는 길이다. 산길이나 양쪽이 숲이나 나무가 있는 아침 길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서 먹이를 잡아 생존하려고 거미줄을 쳐 놓은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면 머리나 얼굴에 거미줄이 걷으면서 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특히 얼굴에 거미줄이 닿으면 느낌이 좋지 않아 그 거미줄을 손으로 다시 걷어내어야 한다. 거미줄은 걷는 눈높이에 맞게 있어서 눈 주변에 닿으면 불편하고, 여러 번 계속되면 짜증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거미줄은 아침에 처음 걷는 사람이 다 걷고 걷는 길이다. 


마을을 지나서 걷는 길은 개들을 짖게 하면서 걷는 길이다. 요즈음은 걷는 사람보다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개들도 사람 지나가는 것이 보기 힘들다. 그러니 내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개들은 짖기 마련이다. 개들이 멀리서부터 짖는 개들이 보통이지만, 가만히 있다가 지나갈 때 갑자기 짖을 때는 정신이 번쩍 든다. 

영리한 개들은 짖다가 지나가면 조용해진다. 그러나 작은 개나 우둔한 개는 오랜만에 짖을 거리를 만난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계속 짖기도 했었다. 

어느 날 산속 길을 가면서 짚고 갈 지팡이가 필요해 산에서 긴 지팡이를 구해 짚은 적이 있었다. 그 지팡이를 산길이 끝나도 계속 짚고 마을을 지날 때 보니까, 개들은 몽둥이 같은 지팡이를 본능적으로 무서워하고 피하기 급급하는 모습을 보았다. 개들은 몽둥이를 두려워하고 잘 짖지도 못했다. 

개들은 자기의 영역에 들어온 사람에게 짓는 것은 본능이고, 그 짓는 소리가 시끄럽다기보다 당연히 감내하면서 걸어야 할 길 소리이다.


걸으면서 오전에는 기분 좋은 걸음이지만, 정오가 지나면 발바닥은 아프고 다리의 무게는 천근이 된다. 마지막에는 숙소를 찾아가는 길이다. 숙소 찾아가는 길은 다리도 아프고 걷기도 힘든 길인데, 걷는 길 주변이 아니고 멀리 있는 숙소 가는 길은 인내를 요구하는 힘든 걸음이 된다. 숙소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 때는 무안히 편안함을 느낀다.


창매 마을에서 걷기가 끝나고 숙소를 찾아가야 할 때였다. 종일 걷고 종점인 창매 노인정 앞에서 숙소가 있는 면 소재지로 가는 무안 군내버스를 기다렸다. 

경로당 안이나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동내에서 경로당 계단에 않아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자가용 한 대가 경로당 앞으로 들어오더니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너무 반가운 소리를 듣고 친절한 사람이 면 소재지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반가운 일도 걸으면서 많지 않아 단순에 타면서 고마워 어쩔 줄 몰랐다. 친절한 부부는 바닷가를 드라이브 중이었다. 타고 가면서 여러 번 감사 인사하고 원하는 면 소재지 숙소 앞에 내렸다. 고마운 승용차는 가고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을 받는다. 주머니에 휴데폰이 없는 것이다.

차에 놓고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내가 내릴 때 두고 내리는 물건이 없도록 살펴보고 내린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창매 경로당에서 마지막으로 휴데폰 본 기억도 난다. 요즈음은 휴데폰이 없으면 경로를 이탈해도 찾을 수가 없기에 필수품이다. 

멍하니 있다가 창매로 택시를 타고 경로당으로 갔다. 휴데폰은 앉아 있던 경로당 계단 위에 있었다. 그동안 누가 오지 않았든지 아니면 주인이 찾으러 올 것이라 알고 손을 대지 않은 것이다. 좋은 일에 취해서 정신을 놓았다가 오히려 더 비싼 비용이 들었다. 그래도 그 부부는 감사한 분들이다.


걷는 동안에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지나고 나서 보면 세월이 천천히 지나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갔다.

걷는 길에서 좋은 글귀를 적어 놓은 곳이 있었다. “오래 산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한 사람이다” 

걷기를 하면 새로운 것을 보면서 가니까 호기심과 즐거움이 있고, 걷고 있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으며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걷고 나서는 걸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걸으면서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진도의 낙원 해안도로를 걸으면서 푸른 하늘과 초록빛 바닷길을 걷다가 보면, 아름다운 섬과 해안선이 구름과 함께 너무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으로 넘어가는 해를 본다면 너무나 환상적인 낙조 해안이라고 한다. 또 다른 진도의 낙원 해안도로는 푸른 하늘과 푸른빛 바닷길을 걸었다. 이곳은 바다와 하늘이 같은 푸른색으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신안의 수많은 섬 중에서 증도에서 본 태평 염전의 일직선으로 늘어선 소금 창고는 장관이었다. 

안개 자욱한 무안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갯벌은 미지의 세계가 감추어진 느낌이었다. 


다시 걷는 길은 오래 걷지 못할 것 같은 마음도 있었지만, 시작해서 마음을 비우고 걸으니까 걷는 것에 익숙해졌다. 예전과 같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아직도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다. 이제 가고 싶은 곳도 갈 생각도 하고, 준비도 할 것이다. 

걷는 것이 내 삶의 작은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걷도록 만들어졌고,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기사가 버스 안에서 “어른요 차가 움직일 때 다니지 말아요”라는 말에 나이 든 사람도 걸을 수 있을 때가 좋은 날이라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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