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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12. 2024

두 마리 자라

뒷산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양 갈래로 물이 흐른다. 한쪽은 마을 뒤를 돌아서 흐르고, 다른 쪽은 마을 앞으로 흘러간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은 마을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흐르는 연못이라 볼 수도 있다. 깨끗한 물이 많이 흐르는 시절에는 아이들이 멱을 감던 곳이고, 아주머니들이 빨래하던 곳이다. 

그곳에 물고기들도 많아 오가며 송사리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던 곳이었다. 물고기들이 많았지만, 그것을 잡지는 않았다. 


송사리가 주로 놀았지만, 붕어나 돌고기가 다니기도 하고 밤이면 메기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았다. 밤에 마실 나와서 놀다가 돌아가면서 랜턴으로 냇가를 비추면 야행성인 고기들이 나와서 활동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러다가 큰물과 함께 흙탕물이 나가면 그곳에 살던 고기들이 다른 고기로 바뀌기도 했다.

작은 송사리가 때 지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수십 일이 지나면 큰 고기들이 노는 것을 본다. 물고기들은 빨리 자라 큰 물고기가 되는 것이 쉽게 볼 수 있는 곳도 앞 개울이었다. 그러다가 큰물이 나가면 큰 물고기들이 바뀌었다. 


지금도 어린 송사리들이 때 지어 다니는 것을 본다. 

멀지 않아서 큰 송사리들이 다닐 것으로 상상하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큰물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큰 송사리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리나 황새가 와서 잡아먹기도 하고, 심하면 수달도 밤에 와서 잡아먹어서 그렇다고 한다. 지금은 큰 송사리가 될 때까지 살지 못하고 잡아 먹히는 앞 개울이 되었다. 

예전에도 물고기를 잡아먹는 새들이 왔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고기들이 늘 많았었다. 

동네 아이들이 파리 낚시로 쉽게 피라미를 잡아 올리던 개울이 이제는 물고기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요즈음은 앞 개울에 피라미 낚시를 할 아이들도 없다.


간혹 개울로 내려가 물고기를 잡으면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피라미이고 뚝지, 돌고기, 붕어, 미꾸라지, 메기도 나오고 외에도 많은 종류가 살았는데, 뱀장어와 자라는 거의 보질 못했다. 개울에 물고기가 많이 늘어날 때는 큰물이 나가고 그 물을 따라서 올라온 고기들이 있을 때였다. 


늘 변함없이 그곳에 있는 개울은 멀리 살다가 고향에 돌아오면, 눈에 익고 반가운 고향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개울 주변은 변해도 흐르는 물길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변했다가도 다시 옛 물길을 찾아 돌아가는 것이 앞 개울이었다. 

그곳에서 멱을 감던 아이들도 빨래하던 아주머니들도 이제는 개울가에 나오지 않는다. 개울은 둑이 높아지고 잘 들어가지 않는 곳이 되어가고 있고, 그곳에 예전에 자주 오지 않던 황새들이 날아든다. 황새들은 개울에 있는 물고기를 만나러 오는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으니까 새들은 더 자주 온다. 

긴 다리로 물 위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물고기를 낚아챈다. 예전처럼 물고기가 없는 것이 새들이 자주 와서 그렇다고 동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새들은 예전에도 왔었다. 요즈음 오는 횟수가 빈번할 뿐이지만 물고기가 자라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개울가에 물고기가 눈에 보이게 줄어든다고 한다. 

새들과 수달이 많아서 물고기 줄어들었다고 믿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그중 수달은 “천년 기념물이지만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다. 개울에 큰 물고기가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들도 지나면서 개울을 보는 재미가 덜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지나다가 개울에 자라가 떠다니는 것을 본 것이다. 금방 소문이 나서 개울을 지날 때 자라를 보이는지 눈을 돌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 이년 전에 가족과 지나다가 자라를 본 것이다. 위에서 유심히 구경하다가 자라가 어느 곳 가서 그 속에 숨는 것이다. 그때 자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지 지켜보라고 하고는 반디를 가지고 개울로 내려갔다. 아직 다른 곳으로 가지는 않았다고 해서 그 주변에 반디를 대고 여러 번 찾았다. 또 더 넓혀서 찾았지만, 자라를 찾지 못했다. 자라는 느린 것 같지만, 신출귀몰해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 뒤로 해마다 자라를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날에는 동남아에서 일하러 온 외국인이 지나다가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지르고, 한 사람은 뛰어 내려가고 다른 사람들은 위에서 망을 보면서 자라를 잡으려고 할 때도 있었다. 

개울에 자라가 사는 것은 확실해졌고, 큰 물고기들이 잘 보이지 않는 개울에서 자라가 동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 자라는 물고기가 아니라서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와야 하기에 마을 사람의 눈에 띄게 마련이었다. 


늦은 오후에 논물을 보러 갔다가 오면서 무심코 개울을 내려다보았다. 

자라가 눈에 들어왔는데,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가 서로 뒹굴면서 있는 것이다. 입으로 서로 물고 뒤집었다가 바로 올라타기도 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물을 튀긴다. 자라가 짝짓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구경하는 재미가 상당해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불러서 같이 구경하려고 둘러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위에서 내려다보아도 두 마리는 뒹굴다가 조용히 붙어서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구경 잘했으니까 지나가려다가 인기척이 있어도 겁도 없이 있는 자라를 가까이 가면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했다. 집이 바로 옆이라 가서 반디를 가지고 내려갔다. 

내려가는 곳이 축대를 높아서 쉽지는 않았지만, 내려가서 가까이 갈 때까지 두 마리 자라는 아직 붙어 있다. 가까이 가도 그대로 있다.

호기심도 생기고 위험을 못 느끼는 자라가 특이해서 반디를 옆으로 댔다. 그러자 알아차리고 급히 도망가는데, 반디로 따라가니까 쉽게 반디 안으로 자라 두 마리는 들어왔다.

한 마리는 크고, 다른 한 마리는 작았다. 

집으로 가져오면서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도 생각해 봤고, 다시 살려줄 생각도 했다. 마치 낚시하는 사람이 고기를 낚아서 보고는 다시 놓아주는 것도 생각나서였다. 

집에 와서 그릇에 담아 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 문득 자라가 생각이 났다. 

살려주려고 나가 자라를 보다가 마침 지나가는 이웃 아주머니가 있어서 자라 이야기를 하니, 그 아주머니도 방생하라는 말을 한다. 방생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잡아 온 것이 후회되고, 그냥 보기만 하고 지날 걸 하는 마음이다. 

믿지는 않지만, 어릴 때 자라는 용왕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들었고 다른 물고기와 다른 취급을 했었다. 혹시라도 자라의 저주나 용왕님의 저주도 생각나고, 실제로 자라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도 없고 그대로 집에 키우는 것도 마음에 닿지 않았다. 


두 마리 자리가 든 그릇을 들고 잡은 개울로 갔다. 

그때 노인회 모임에 갔던 노인들이 차에서 내려서 들어오면서 자라 구경하러 모인다. 이제 노인들은 모두가 방생하라고 합창하듯이 말한다. 혹시 생각지 않은 나쁜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눈치이다. 

방생하면 좋은 일 생긴다고 이야기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사실 좋은 일은 생길 수가 없다. 방생하기 전에 잡지 않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라를 개울 쪽으로 위에서 던져 주었다. 

자라가 사라지는 것을 노인들과 같이 지켜보았다. 자라는 개울에 들어가자마자 시야에서 잠깐 사이에 사라진다. 어디로 가서 숨었는지 찾으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방생해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할머니들이 한마디씩 하지만, 그런 일은 바라지 않지만 나쁜 일은 생기지 않겠지 하는 안도감을 생각해 본다. 

그런데 세상일을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미래에 좋은 일이 생기길 바라는 것은 평범한 마음이다. 하여튼 나쁜 일은 없었으면 한다. 다음에는 호기심에도 잡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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