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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23. 2024

물잠자리와 놀던 여름날

한여름 햇볕이 한창 내리쬘 무렵 초등학교에 갖 들어간 또래들은 집에서 점심밥 숟가락을 놓고는 곧바로 탑 밭에 모인다. 탑 밭은 오래된 송림 숲에 탑이 있는 곳으로 밑으로 물이 돌아가면서 윗 탑 밭과 아래 탑 밭으로 물길이 머무는 곳이 나누어져 있다. 윗 탑 밭은 수심이 깊고 바닥이 청석으로 되어 멱 감기는 그만이고, 아래 탑 밭은 수심이 조금 얕지만 넓은 곳이면서 자갈이 많은 곳이다.

아이들이 멱을 감은 곳은 주로 윗 탑 밭인데, 아이들 키보다는 더 깊은 곳이 있지만, 멱 감으면서 개헤엄치고 놀기는 그만이다. 마을에서 탑 밭으로 가는 길은 논둑을 지나서 가기에 내리쬐는 햇볕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고 보통 뛰어서 탑 밭의 솔밭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은 솔밭에서 멱 감는 윗 탑 밭으로 뛰듯이 내려가 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었다.


물속에 뛰어들어 시원한 맛을 아이들은 느끼면서 개헤엄으로 물속을 왔다 갔다 하면서 먼저 온 아이들과 웃고 떠들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보면 동네 아이들이 거의 물속에 들어와 있을 때도 있었다.

또래끼리 물속에 잠수도 해보고, 요란하게 물장구치면서 개헤엄도 친다. 그렇게 한여름 물속에서 또래들과 떠들면 노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한창 떠들고 물장구치다가 편 갈라서 물싸움도 자주 하지만, 지치는 줄 모르고 놀았다. 개헤엄으로 윗 탑 밭에 깊은 곳은 헤엄쳐서 지나고 얕은 곳에 발을 붙이고 노는 것이다. 아이들은 깊은 곳에 빠지지 않을 정도는 개헤엄을 쳤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처음 개헤엄을 배울 때도 또래에서 먼저 배운 사람을 따라 하거나 한 살 더 먹은 아이들이 가르쳐 준 것이다. 이 시절에는 따라 못하면 아이들은 마음이 상해서 나름 악착같이 배웠다. 


한창 놀고 있는데 고학년인 정열이가 탑 밭에 나타났다. 

탑 밭에서 멱 감던 아이들이 조용해진다. 정열이가 옷을 벗고 들어오는 곳에는 거리를 두고 물러선다. 몇 아이는 물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의식해서 정열이는 처음에는 오늘 물에 빠뜨리지 않겠다고 유화책을 쓴다. 그래서 아이들은 믿지 못하면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눈치를 보면서 멱을 감는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같이 장난도 하면서 멱을 감다가 본색을 드러내서 정열이는 아이들을 물에 빠뜨린다. 키가 크니까 깊은 곳으로 아이들 팔을 잡고 들어가 그곳에 놓아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팔을 놓지 않으니까 아이들은 깊은 곳에 발이 닿지 않아 물속에 빠지고 물을 먹은 것이다. 그중에 헤엄을 잘 쳐서 계속 발 헤엄으로 물속에 빠지는 않는 아이는 머리를 물속으로 눌러서 못 올라오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물을 한껏 먹어서 발버둥 치면 놓아주는 것이다. 그때쯤에 빠른 아이는 물 밖으로 나가서 옷을 가지고 솔밭으로 도망간다. 그렇게 빠르지 못한 아이들은 물 밖에 정열이에게 잡혀서 물속으로 끌려 들어와 물을 먹였다.

도망간 아이는 다음날 멱 감으로 와서 만나면 그때 물을 먹이는 것이다. 그러니 도망가고 싶어도 다시 탑 밭에 멱 감으러 올 생각을 하면 쉽게 못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힘이 없어서 물을 정신이 혼미할 때까지 먹을 때도 있었다. 정열이는 아이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물을 먹은 아이들은 집에 가서 어른들에게 하소연하면 성질 급한 어른들은 정열이 엄마에게 항의도 했지만, 정열이의 악행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물도 먹어 가면서 크는 것이 아이들이란 생각이 더 깊었던 시절이었다. 


탑 밭에서 한 차례를 물을 먹이고 나면 정렬이가 가고 나서 아이들도 물에서 나온다. 

멱을 오래 감아서 눈도 붉게 충열되고, 입술이 파래진 것을 탑 밭의 따뜻한 청석 위에서 몸을 말린다. 오래 멱을 감아서 힘도 들고 물도 먹었으니 한참은 조용히 앉아 있다.

그러다 보면 조용해진 탑 밭 물가에 물잠자리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인다. 아이들이 나와서 조용해진 물가를 물잠자리들이 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때 아이들이 한참을 물잠자리를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변에 나뭇가지나 잎이 많은 풀 가지를 꺽어 물잠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정열이에게 물을 먹을 것을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물잠자리 따라 다니기에 바쁘다. 물을 먹어서 힘들었던 생각도 잊고 물잠자리 잡기에 재미가 한정 없다.

물잠자리는 그렇게 빨리 날지 못해서 아이들이 손에 든 풀 가지로 날아가는 것을 내리치면 맞아서 떨어진다. 날개가 떨어지기도 하고 통째로 물속으로 떨어져 떠내려가기도 한다. 아이들은 물잠자리는 물가를 멀리 벗어나지 않기에 위 탑 밭 주변에서 따라다니다가 아랫 탑 밭까지 자리를 넓혀서 따라다니며 물잠자리 잡기에 열중이다. 물잠자리는 갑자기 벼락을 맞는 분위기이지만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면서 몇 마리 잡았다고 자랑을 한다. 한 마리 잡을 때마다 함성을 지르고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멱 감으면서 정열이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윗 탑 밭과 아랫 탑 밭을 뛰어다니면서 푸는 것이다. 

물잠자리는 윗 탑 밭에서 아이들이 잡으려고 뛰어다니면 아랫 탑 밭으로 도망을 갔다가 아이들이 아랫 탑 밭으로 따라오면 다시 윗 탑 밭으로 필사적으로 날아다닌다. 그래도 아이들이 날래서 따라다니면서 내리치는 풀 가지에 맞아서 떨어지면 물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많이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래도 물잠자리가 날다가 물가의 구석진 풀잎에 붙어서 날지 않으면 살아남기도 했다. 


아이들이 물잠자리 잡기도 흥미를 잃어 가면 각자가 집으로 돌아갔다.

탑 밭에 올 때는 더워서 뛰다시피 와서 물에 들어가면 시원했었는데, 이제 돌아가면서 물잠자리 따라 다니면서 땀을 흘리고 아직 중천에 떠있는 뜨거운 햇볕으로 더워 짜증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도 집에 가서 지금까지 피곤할 정도로 놀았으니까 배가 훌쩍해서 먹을 것이 있는지 보려고 가는 것이다.

탑 밭에서 돌아가는 논둑 길에 물잠자리가 도망 와서 날아다니는 것도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이제 물잠자리에게 눈이 가지 않는다. 


다음날이면 다시 아이들이 탑 밭으로 모여들어 멱을 감는다.

어제 일은 잊어버린 것처럼 웃고 떠든다. 아이들은 물에서 놀다가 바깥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니까 어깨와 온몸이 검게 탄 지 오래다. 아이들은 정열이가 오지 않을 때까지는 매우 즐거운 탑 밭 멱감기이다. 

정열이가 간혹 오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정열이네 집이 탑 밭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었다.


물잠자리는 아이들이 멱을 감으면 잘 보이지 않다가 끝나면 잘 보인다. 물잠자리도 아이들이 오지 않으면 심심한지도 모른다. 대체로 아이들이 멱을 감고 있으니까 물가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아이들이 멱을 다 감으면 날 잡아 봐라는 듯이 날아다닌다. 

어제 날에 아이들이 물잠자리를 많이 잡아 물에 떠내려가고 땅에 떨어진 물잠자리는 개미들이 다 옮겨 갔는데, 오늘 다시 물잠자리는 어제만큼 날아다닌다. 

물잠자리는 밤새 새로 태어났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날아와 아이들이 멱을 감은 탑 밭에서 날고 있었다.


탑 밭도 그때는 솔밭 사이에 석탑이 세단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변에 돌무더기만 쌓여 있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탑 밭에 요즈음은 왜가리들이 날아든다. 왜가리들이 둥지를 틀고 자리 잡고서 새 터전을 만든 것이다. 예전에 탑 밭에는 뱀들의 천국이었는데, 왜가리들이 나타나고는 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깨끗하고 청석이 깔려 있던 탑 밭의 물도 흙들이 쌓여서 얕아지고 청태가 끼여서 물이 탁하다. 

이곳의 나무나 청석은 그대로 있고 탑 밭의 모양도 아직 간직하지만, 정열이와 아이들도 오지 않는다. 탑 밭 위의 소나무는 그대로이고 춤추는 물잠자리는 오늘도 열심히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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