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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Jan 31. 2024

음식 에세이를 읽으며 머리스타일을 고민하다

가쿠타 미쓰요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가쿠타 미쓰요는 나이를 먹으면서 고급스럽고 맛난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는데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음식보다는 (물론 음식도 포함되지만) 싫어하고 기피하는 게 많아진 듯하다. 싫어하고 기피한다기보다는 사소한 불편감도 참을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나이가 어릴 적에는 잠깐 참고 말지,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강도가 세게 잠깐이라도 참을 수 없이 끔찍하게 다가오는 듯싶다. 온화하기보다는 까탈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머리 길이가 어깨에 닿는다. 치렁치렁하고 부스스하고 거추장스럽다.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 쓰인다. 여름에 한 웨이브가 남아 있어 한 두 달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면 자르던지 펌을 하면 될 거 같은데. 아이들은 방학이고 경조사가 있는 시기도 아니고(명절에야 가족만 모이니) 나갈 일도 없는데 영, 불편하다. 머리카락이 내 어깨를 찌르는 것도 아닌데

 

펌을 하기에는 남아 있는 웨이브가 아깝고(세네 시간 미용실에 앉아 있는 시간도 아깝고) 펌 없이 자르자니 손질이 까다로울 듯싶고. 사나흘 고민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남편 퇴근 후 미용실로 향했다. 집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이 미용실은 익숙한 곳이다.(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나이, 어쩌나) 남편 머리부터 아이 머리 내 머리까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어떻게 자르실 거예요?

어깨에 안 닿게요. 웨이브를 살려서 손질이 간편했으면 좋겠어요.

이 기장으로 자르면 C컬만 남을 거예요.

 

집으로 돌아온 후 전보다 낫다는 가족들의 반응이 있었지만,  또 무언가 불편하다. 뭐지, 뭘까 원하는 기장으로 자른 건데.

펌을 안 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학생 때 머리가 떠오른다. 펌도 염색도 없이 자르기만 할 때. 스타일 그런 것도 없이 아무 미용실이나 아무 때나 들어가 잘라주세요, 말하던 때.

머리를 자르고 나면 그렇게 산뜻할 수가 없었다. 외모와는 상관없는 상쾌함, 산뜻한 느낌이 있었다.

 

지금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그 산뜻함구나. 시간과 관계되는 산뜻함, 그 나이대에서만 가능한 산뜻함, 돈으로 살 수 없는 산뜻함. 지금은 좋게 말하면 중후함이다. 산뜻함보다는 중후함이 스며있는 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산뜻함을 내가 찾았던 거구나.

 

다행히도(불행히도) 내 옆에는 같이 중후해지는 남편이 있다. 나이 들어 너는 더 나아졌어.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예뻐서 나이 드니 못생겨 보이기도 하는데, 너는 처음부터 못생겨서 지금도 못생기니 오히려 나아 보여. 지금이 훨씬 낫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가쿠타 미쓰요의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는 머리 스타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식에 관한 에세이다. 어린 시절 기피하던 야채를 먹고 생선을 먹는 가쿠타 미쓰요는 나이가 들며 더 온화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저자는 싫어하던 식재료에게도, 손 안 대던 야채들에게도 맛있다! 외치게 되었다.(분명 모든 식재료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한 품성이 됐으리라.) 나는 편식이 점점 심해지는데(어쩌누,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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