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남북녀 Feb 28. 2024

두 주만에 책 두권 반납하는 여자

그레이스 페일리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I can buy myself flowers(날 위한 꽃은 나도 살 수 있어)

                                                                     -Miley Cyrus


두 주 안에 책 두 권을 반납하지 않은 것은 삶이 바빠서다. 우연히 만난 전남편은 도서관 반납 창구까지 따라 들어와 여자를 비난한다. “여러모로 우리 결혼생활이 끝장난 건 당신이 버트럼네 가족을 저녁 식사에 한 번도 초대하지 않은 탓이라고 봐.”


버트럼네 가족을 초대하지 않은 것 역시 삶이 바빠서다. 아버지가 아프고, 아이들이 태어났으며, 필요한 모임이 있었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식사시간은 좋았다는 전남편은 여자가 결혼생활 동안 배불리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몰랐을 거다. 안전한 복장으로 아이들을 캠프에 보내고 추운 계절에 집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쓸 만한 베개와 침구를 갖추는 것이 여자의 관심사였다. 요트에 관심이 있었던 전남편은 요트를 원하지 않은 것이 여자의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난 요트를 갖고 싶었어. 당신은 원하는 게 없었지만 말이야.”


27년을 함께 사는 동안 속 좁은 말을 하는 버릇이 있던 전남편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실 길이가 5미터 반쯤 되는 돛대 두 개짜리 요트를 사려고 계약금을 걸어두었어. 올해는 제법 괜찮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거든. 하지만 당신은 영영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을 거야.


전남편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원하는 게 없는 게 아니라 원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가족의 안녕과 안락을 위해 여자가 희생해 온 시간을. 자신의 것은 항상 맨 나중으로 미루느라 두 블록 떨어져 있는 도서관을 가지 못해 18년 동안 밀려 있는 연체료가 32달러라는 것을. 요트를 바라는 전남편은 요트를 가지지 못한 것이 결혼 생활의 가장 큰 슬픔이었을 테니.


속 편한 말을 마음대로 지껄인 후 언제나처럼 전남편은 사라진다. 계단에 주저앉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여자를 두고


이혼의 이유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또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는 것을) 많은 것들이 생략된 짧은 이야기(여섯 쪽) 속에서 유추해 본다. 남자에게는 친교 생활과 취미생활이 중요했다면 여자에게는 그런 것을 바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여자에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이 넘쳐났고 그것에 충실했다. 한정적인 자원 안에서 모두에게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자신을 제외한) 애썼으리라. 남자에게는 원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지루한 여자로 비췄겠으나. 한 남자와 죽을 때까지 부부로 사는 소망을 이루지 못했으나 두 주 만에 책 두 권은 반납하는 여자가 되었을 거라는 상상은 해본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 주는 교훈일 테니


“바로 오늘 아침 나는 창밖으로 한동안 길거리를 바라보다가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기 2년 전, 시 당국에서 심어놓은 작고 멋진 플라타너스들이 그날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19p




살만하니 떠나가는 남편과 공황장애를 일으키며 쓰러지는 여자


자기 자신 없이 살던 삶의 부채 32달러


바로 오늘, 지금이 전성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 마디의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