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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Mar 20. 2024

검은 소파

이사 후 휑한 거실에서 결재된 검은 소파는 그때의 재정상태를 고려하여 최저가의 최저가를 검색했다. 이등분으로 구분된 앉는 자리와 세 등분으로 구성된 등 쿠션으로 이루어진 소파.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길고 커다란 박스를 등에 메고 설치 기사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소파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회색 유니폼을 입은 설치기사가 다 됐습니다. 먼지가 있으니까 물걸레로 한 번 닦아서 쓰세요. 말했을 때 가죽은 물걸레로 닦으면 안 되지 않나요? 반문했다. 애매한 웃음을 머금은 설치기사는 뭐 상관은 없습니다, 한숨 쉬듯 얼버무렸다. 우리 소파는 물걸레든지 그냥 걸레든지 상관없는 좋은 물건입니다,라는 자부심보다는 가격만큼 대충 만든 물건이니 그냥 써도 상관없는 보잘것없는 물건입니다,라는 의미 같아서 온통 검은색에 투박한 모양의 소파를 기대 없이 바라보았다.

     

별다른 기능이 없는 소파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 때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코가 막혀 침대에 누워 자기 힘든 아이들은 코를 훌쩍이며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있다 그대로 잠들었다. 침대에 뉘이면 다시 나와 소파에서 잠들었기에 몇 번의 시도 끝에는 감기의 걸린 아이의 잠자리는 처음부터 소파가 됐다. 나머지 세 명은 소파 옆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주말 아침에는 쟁반에 받쳐 룸서비스처럼 소파로 가져간다. 아그작 아그작 소파 위에서 간식을 먹고 영상을 보고. 두 아이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


삼 년이 지나는 동안 아이들이 뛰어오르고 장난을 치며 벨크로 테이프로 부착된 소파의 등 쿠션은 비뚤어지고 가죽은 군데군데 해졌다. 기회가 되면 남들도 인정하는 값나가고 멋스러운 소파로 바꿔야지, 다음 소파를 꿈꾸기도 하나   

  

소리가 제 키의 반 정도 되는 나도의 무릎을 베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낸다. 나도는 두 발을 쭉 뻗은 상태로 무릎은 누나인 소리에게 내어주고 소파에 앉아 자는 중이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새벽에 엉킨 동물처럼 평화롭게 소파 위에서 잠든 아이들. 이디스 워튼의 단편집 책장을 넘기다가 들어온 풍경에 이 환해진다.무방비 상태에서 습격해 온 평온함.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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