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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Jun 12. 2024

잘못된 구원자

몸 파는 여자 같다 느끼며 지하철에 앉아 있다. 내 생각에 동의하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들이 있다. 속눈썹 붙인 눈이 따끔거리고 진하게 칠해진 파운데이션이 갑갑하다. 입술이 공중에 둥둥 떠도는 것 같다. 낯설고도 기이한 감각에 두통이 밀려온다.

 

중학교 1학년 때 J는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방송으로 하소연도 해보고 다시 받아달라고 어머니를 붙들었으나 어린 시절부터 J를 키워온 여자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방송팀이 J와 살던 집을 찾아갔으나 여자는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혼자 남은 J는 친아빠가 있다는 시골집을 찾았다. 시골집에는 아기 때 J를 입양 보낸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이분들은 나에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열 살 차이 나는 파양아 J는 오빠의 딸이다.

 

방을 얻어 혼자 지내고 있는 J를 방문했다. 친구를 사귀어 나까지 네 명이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십 대 후반인 그들은 까르르 웃고 J를 위했으며 J처럼 내게 고모라 불렀다. 쌍꺼풀 없는 눈에 까만 눈동자 작은 입술을 가지고 있는 J는 친아빠를 만났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한다. 무슨 생각인지 나는 한 달에 십만 원씩을 보내겠다, 했다. J의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고모 우리가 화장해 줄게요. 한 칸짜리 작은방에서 눈을 감는다. 눈썹을 붙이겠다, 분홍을 칠하겠다 난리 법석이다. 스프레이가 뿌려지고 기침이 나온다. 기침소리에 이들은 또 까르르 웃는다. 걱정 근심은 전혀 없다는 듯이. 거울을 본다. 괴상한 모습에 깜짝 놀랐으나 고모 예쁘다, 고모 예쁘다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당연한 결과였으나 보상받은 화장에 한 번도 응답하지 못했다. 어린 친구들조차 화장을 해주고 싶다고 느끼는 그런 몰골이라는 것을 그 당시의 나는 알지 못한다.

 

금요일에 Y와 집회에 참석한다. 믿을 만한 지인의 소개로 처음 가게 됐을 때 선교사님은 Y의 뒤통수를 치며 귀신이 들렸다 했다. Y를 둘러싸고 여러 명이 기도한다. Y의 눈은 날카로워지고 기도하는 내내 바닥에다 침을 뱉는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차가 끊겼다. 택시를 탈 돈이 없어 우리는 걷는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럼 다시 내가 다해야 하잖아. Y의 눈이 한순간 반짝인다. 환상인가, 눈을 크게 뜨고 Y를 쳐다본다. 멍하고 어눌한 Y가 돌아와 있다. 타인의 지속적인 배려와 동정을 필요로 하는 귀신 들렸다는 Y. 라볶이랑 파전 먹고 싶어. 사줘, 사줘.

 

스무 살이 되지 않은 M은 임신했다.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으며 할머니와 둘이 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앞치마를 두르며 아이 아빠는 묻는다. 아이 아빠에 대해서는 묻지 마, 언제나와 같은 순박한 미소로 M이 대답한다. 사장이 들이닥친다. 식료품 주문을 잘못했다고 M을 호통친다. 던지듯이 돈을 주고 내쫓는다.


한동안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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