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켜라” Song by 타카피
“그런데 이상한 일이 어째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하고 차가운 그녀의 바람 Hi hi hi hi”
노래 가사만 놓고 보면 짝사랑하는 여성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해 위로를 건네고 싶은 한 남자의 이야기 같지만 ‘그녀에게 그녀가 있다’라는 가사와 함께 보면 내가 고백한 그녀는 이미 사랑하는 여성이 있는 동성애자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 물론 동성 친구를 친구로서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남자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상태의 여성이라는 가정도 배제할 수는 없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남성이 여성에게 고백하는(또는 그 반대) 장면을 상상하면 작곡가가 곡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의미가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회의 많은 이슈들 또한 그동안의 사회적 잣대로만 보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기에 타카피가 부른 ‘그녀를 지켜라’를 내가 추천하는 이유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누구에게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하루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빨리 잊혔으면 하는 어두운 시간의 연속일 수 있다. 게다가 그 누군가가 우리가 정해 놓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의 기준에 못 미친다면 더욱 어둡고 괴로운 시간이리라.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적당한 기준을 정해놓고 그 기준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사회를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기준에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하며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소수 종교를 따르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언제나 죄인 취급을 받는다. 사회적 융통성이 전혀 없는 그들의 대표적인 비난의 이유는 ‘병역 거부’다. 그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지, 종교적 신념에 따라 그런 건지는 중요치 않다. 어쨌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2년간 고생한 경험을 그들이 기피하는 것은 충분히 비난 받을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애초에 그들에게 병역의무 이행이라는 헌법적 가치도 보존하고 병역필 남성들의 보상 심리도 해치지 않는 ‘대체 복무제’의 활용은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성소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 영화감독은 자신의 동성 결혼 소식을 SNS를 통해 알리자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욕설과 비방으로 곤욕을 치르곤 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종교적 가르침을 잊은 채 보수 기독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인용해 동성애자들을 공격한다. 애초부터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동성애자는 이웃이 될 수 없었던 것 같다. 자신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한 사람의 인격을 무참히 공격하는 게 정당화 될 수 있을까?
현재의 한국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적으로 만들 대상이 힘없는 소수자일 때 그 폭력성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진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는 기대할 수 없다. 그저 나와 다름은 비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에 충분한 사회가 돼버렸다. 진격의 한국인,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한명만 걸려봐라. 내가 아주 바닥까지 떨어뜨려줄 테니.” 과격한 비약이 될 수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심리 상태를 잘 대변해 주고 있는 표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