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 소소한 일상
요즘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각지에서 열리는 북페스티벌에 참가해보려고 한다. 큰 규모의 북페스티벌은 보통 대형 출판사를 위한 자리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작은 규모의 북페스티벌은 독립서점, 소형 출판사들이 주를 이루는 자리가 보통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다수의 출판사가 작은 출판사이고 큰 출판사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 여기서 말하는 작은 출판사는 1인 출판, 혹은 해봤자 2명이나 3명 정도의 정말 작은 세를 유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다.
당장 근래에 만났던 목수책방의 책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의 골목길에서는 산이 보인다』, 분명 출판사 기준으로는 노력 대비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 책이다. 안에 사진이 많이 들어가기에 4도로 인쇄를 해야하고 그 두께도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껍다.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읽히는 주제도 아니고 이런 컨셉의 글은 오히려 다른 책들에 비해 인기가 떨어진다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책을 만든다. 그리고 북페스티벌에 가져와 이런 책들을 선보인다. 그러니 내가 북페스티벌에 방문할 수밖에. 나는 대형 서점 매대 위에 올라온 책들도 알고 싶지만 매대 위에 올라가지 못한, 올라가지 못할 책들도 알고 싶다. 만인을 위한 책에 대해 알고 싶은 만큼 일부 누군가를 위한 책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아, 하지만 이번 부천 북페스티벌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출판사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많이 적었으니 또 새로운 책을 사왔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부천에서 열린 북페스티벌은 온전히 가족들을 위한 행사였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갔던 북페스티벌은 책이 주, 사람이 부였다면 이번에는 사람이 주, 책이 부가 된 느낌. 그게 싫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을 위한 행사에 책을 함께 엮어본 행사 기획에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찾아보니 지난 23년 북페스티벌은 인근의 독립서점, 그리고 평생학습축제와 함께했다고 하는데 올해 아예 방향성을 틀어보는 시도가 참신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방문하면서 행사장도 북적거려서 더욱 좋았고.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와 그 외에 간단한 일상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사실 부천 시민이 아니라면 잘 모르고, 부천 시민이어도 잘 모르겠지만 부천 북페스티벌은 벌써 24회째를 맞이하는 꽤나 역사와 전통이 깊은 행사다. 열리는 위치는 늘 부천시청, 역에서 멀지 않아 접근성도 좋고 인근에는 중앙공원이라고 불리는 큰 공원이 있기 때문에 축제 기간 도중 인근에서 놀던 아이들이 방문하는 일도 종종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도 시청에서 북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했었는데, 당시에는 별로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 그 나이, 그 시절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주말이면 밖에 나가 놀고 피시방에 가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도서부 아닌 도서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학교 3년동안 북페스티벌에 가보는 일은 없었다. 아마 북페스티벌을 하던 때에 중앙공원 근처를 나다니는 일은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북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까지 무언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살 만큼 여유롭게 용돈을 받지도 못했고.
부천시청역 근처에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 현대백화점을 찍었다. 현대백화점의 외견만 보면 주변 건물들과 비교했을 때 위화감을 줄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런 느낌을 크게 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는 유플렉스가 똑같이 하나 더, 그리고 맞은 편에는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경기예고와 경기아트홀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현대백화점 앞을 지나기 때문에 맞은 편에 있는 경기아트홀까지 눈을 주지 않는데 지나가는 길에 오른쪽을 보면 비슷한 외견,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검은 톤의 건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청은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아마 오늘 친구와 함께 북페스티벌에 가지 않았다면 바로 시청으로 향했으리라. 하지만 만난 후에 점심을 먼저 먹기로 했기에 시청보다 조금 먼 곳으로 자리를 옮겼고 조금 늦은 시간에 북페스티벌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하늘이 이미 많이 흐려진 상태였고, 가족 단위 방문자들도 이런 우중충한 하늘에 곧 비가 쏟아질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슬슬 자리를 정리하는 낌새를 보였다. 일부는 중앙공원에 있는 정자로 피신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일부는 아직 행사장에 있는 체험 부스를 다 즐기지 못했는지 체험 부스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지난 글에서 내가 이번 북페스티벌은 아마 평소와 다를 거 같다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역시 생각했던 대로 이번 행사는 평소 서점에서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행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인근에 아이들이 읽기 좋은 동화와 같은 책들을 꽂아놓은 매대를 배치해놓고 광장 앞에 놓인 텐트에 자유롭게 들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말하자면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행사.
시청에서 주관하는 행사기에 가능한 방식이었고 나는 이런 행사 진행에 호평을 주고 싶다. 그간 있었던 북페스티벌은 서점에서 책 판매와 소개를 겸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이런 행사에서는 필연적으로 부스 앞에서 기다리고, 책을 확인하고,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기다리는 시간이 괴로운 아이들에게 적합한 행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한 북페스티벌을 연다고 해도 이런 셀링 중심의 행사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판매 부스를 최소화하고 체험 부스, 그리고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만을 마련해 진정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만들었다고 호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기에 상업성이 0에 가까워져서 지역 서점들이 합류하기 어려운 행사가 되어버렸지만.
북페스티벌은 현 세대의 독자를 위한 축제가 대다수지만 미래의 예비 독자들을 위한 축제라는 방향성도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특히 이런 상업성이 떨어지는 라이트한 기획은 시청에서 앞장서서 해줘야 하고. 어린 시절 책에 대한 좋은 경험을 토대로 독서를 시작한 성인들이 적지 않은 것처럼 아이들에게 좋은 독서 경험을 주는 건 미래의 독자를 늘리는 행동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리면 상품을 드려요, 와 같은 행사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런 실질적인 체험 활동과 좋은 독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사실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가서 체험 활동을 해보지는 못했다. 아이들을 위한 행사였고 아이들이 줄서서 3D 펜으로 물건을 만드는 걸 기다리며 보고 있는데 카메라 가방을 멘 우중충한 어른이 뒤에 설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멀찍이서 둘러보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쯤 나도 자리를 옮겼다. 토요일날 왔으면 더 좋은 날에 이 축제를 볼 수 있었을까. 토요일날 개인적으로 왔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남는다.
행사가 끝난 후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 인근의 크래프트 맥주 집에서 시원하게 마시고 헤어졌다. 근래에 크래프트 맥주 인기가 시들해지고 하이볼의 인기가 올라오면서 내가 좋아하던 맥주 집들이 많이 사라졌다. 나도 맥주를 그렇게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이 끝난 후에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은 맥주 밖에 없는데... 얼마 전에 전국 크래프트 맥주 지도라고 누군가 만들어놓은 지도를 보고 집 근처에 있는 맥주 집들에 방문해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와인도 좋고 하이볼도 좋지만 역시 바삐 돌아다닌 후에는 맥주야!
포토샵, 일러스트, 인디자인 쪽 그래픽을 배우려고 국비지원이 되는 학원을 알아봤는데 과정이 이미 열렸거나 사람이 모이지 않아 취소되는 과정이 많아 어쩌다보니 12월 말에 있는 과정을 통해 배우게 될 거 같다. 목표는 배우기 전, 중간 내내 취업 활동을 병행해서 중간에라도 취업하기, 안된다면 배운 걸 또 포트폴리오에 추가해서 취업해야겠지만.
이제 내일이면 10월도 끝이 난다. 11월이면 이제 가을의 끝자락인데 올해는 가을을 느낄만한 일들을 많이 했던가? 아니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추위가 벌써 다가오고 있기는 한데, 늦었지만 다음달에는 가을 정취를 느낄만한 일들을 조금이라도 해봐야겠다. 어디에 놀러간다던지, 산에 간다던지, 다른 행사를 보러 간다던지 하는 행동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