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하겠습니다."
"그래, 밖에 나가서 뭐 할까 고민은 해봤고?"
의외로 반장님의 입에서 가벼운 목소리가 나왔다. 마치 오늘 저녁에는 뭘 먹을 거냐고 물어보는 느낌의 질문. 한 번쯤은 재고해 보는 게 어떻겠냐 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이렇게 쉽게 군생활의 끝이 보일 줄은 몰랐다.
"도서 편집자 생각 중입니다. 정비사는 말고요."
"편집자? 갑자기?"
아, 이번에는 좀 놀랐다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하긴, 자기 군생활하는 30년 동안 전역한다는 간부는 많이 만났어도 항공 정비사 일을 그만두고 편집자가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 진지한 상황에서도 장난기 섞인 목소리를 내며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는 점, 그 점 때문에 하사들은 반장님을 많이 좋아했다.
"그래, 그쪽을 좋아한다 했었지. 아, 그래도 네가 먼저 부대를 떠날지, 내가 먼저 부대를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그러면 1년 남았으니 그 사이에 준비 잘해서 나가라."
이 사람은 자기가 전속 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6개월 후, 반장님이 먼저 우리 부대를 떠나셨다, 전속의 형태로. 평소 이제는 가족들하고 생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시던 분이셨는데 올해도 못 가면 전역도 생각 중이다 하시던 분이 이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니 행복해하고 계시겠지.
내 군생활은 이렇게 끝났다. 나는 대구에서 근무했고, 서산으로 부대를 옮겼으며, 거기에서 군생활을 마무리했다. 전역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전 조장님과 한바탕 싸우고 그쪽 라인에게 찍힌 거도 있었고, 애초에 항공 정비사에 꿈이 없기도 했었고, 괴로운 가족을 많이 보기도 했었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고.
촌동네에 있는 부대가 으레 그렇듯 서산 부대에는 괴로운 가족이 너무 많았다. 공군 내부에서 서산 비행단은 대외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뿐 격오지와 다를 바 없는 부대였다.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비행단, 한 번 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비행단, 사건사고가 많은 비행단, 사회와 단절된 곳에 위치한 비행단, 속칭 개미지옥. 모두 공군에서 서산 비행단을 지칭할 때 부르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 비행단에 전속 오는 모든 인원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전역하던지, 앞으로 10년 넘는 세월을 기러기 아빠로 살던지. 나랑 같이 서산에 올 예정이었던 다른 특기의 한 선배는 전역계를 제출했고, 같은 특기의 선배는 기러기 아빠로 살기로 결심했다. 이미 상사 끝자락인 시점에서 다시 전속 신청을 해 예전 부대로 돌아가지는 못할 테니 앞으로 10년, 지금은 중학생인 아이들이 모두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갈 때까지 계속.
이미 중사를 달고 내일모레면 10년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그런 삶을 살 자신이 없었다. 하루하루 부대원들이 포기하고 떠나는 자리를 홀로 지키며 살 자신이 없었다. 내일이면 A 하사가 전역하는데, 다음 달이면 B 중사님이 전역하지? 상사님, 직보가 언제시라고요? 아, 내년 이맘때쯤 전역이시니까 다음 달부터. 결국 모두가 떠난다고 줄을 설 때 나도 그 후미에 서게 되었다.
나가면 뭘 할까, 예전부터 꿈꿨던 출판 편집자가 되자. 돈은 지금에 비하면 못 벌테고, 내 경력도 인정받지 못하겠지만 지금과는 달리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행복하겠지. 돈을 더 모아서 석사 과정도 밟고,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 보자. 결혼은... 안타깝지만 이제 그렇게 살면 돈이 없을 테니 포기하자. 연애도 이젠 무리니까, 포기하자. 그리고 하나 더 군대를 그리워하지는 말자.
지금 쓰는 글이 군대를 그리워하는 과정일까. 나는 가끔 내가 장교로 재입대하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군수 장교가 아닌 정훈 장교로. 왜 이런 상상을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군대 시절을 끔찍하게 싫어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워해서 그런 걸지도. 아니, 사실 군대는 싫어하지 않았는데 정비사라는 일 자체가 싫었던 걸지도 모르고.
앞으로 써 내려갈 글들은 내 그리움과 추억의 산물이다. 내가 입대했던 때부터 대구에서 보냈던 병사 생활, 부사관 생활, 서산에서의 생활, 그리고 전역까지. 모든 글이 끝났을 때 비로소 후련해질까. 아니면 그리움이 괴로움으로 변해있을까. 지금의 나로는 상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