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레맛곰돌이 Nov 18. 2024

1. 사람이 모인다는 건

훈련소, 기억의 편린

0


 훈련소,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훈련소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해 봤다. 당연한 의미로는 군인을 양성하기 위해 청년들을 교육하는 장소. 구성 인구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면 공통분모 없는 인원들이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이라는 이유로 모이는 장소. 모집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20대들이 겪어보지 못한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모임이 아닌 장소. 훈련소는 어떻게 정의하려고 해도 무언가 나사가 빠진 장소였다. 모두 필요해서 모인 것도 아니고, 서로 공통점을 지닌 것도 아니고, 관심이 있어서 모인 것도 아니다. 그저 '어른이라면 하기 싫은 일도 할 줄 알아야 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 아,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비로소 무언가 묶인 기분이다.



1


 내가 입대하던 날도 추적추적 비가 더럽게 내리던 날이었다. 비 때문에 처벅, 강당에는 의도치 않게 떼탄 물 발자국이 찍히고, 다들 그 발자국 위에 불유쾌한 마음으로 서고, 이 빗길에 각자 가족들을 보내고, 이후로 쓸모없는 시간을 잠깐 보내다가 2주 차부터 훈련 시작. 참고로 그때 내 나이가 딱 20살이었다. 20살 2월, 고등학교 졸업하고 2주 후.


 군에 입대하는 게 싫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고, 그냥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입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전문하사를 양성하는 학교였고, 항공정비사를 양성하는 학교였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에는 무조건 장기복무가 될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놓고서는 고등학교 입학 후에 안 될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기당했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배는 떠나버렸으니.


 고등학교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렴풋하게 느끼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사회경험이 부족한 어리고 미성숙한 아이였다. 남들이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수동적인 학생이었고, 내게 선택지가 없었기에 모든 걸 달관한 채 받아들이는 좋지 못한 태도의 학생이었다. 애초에 만들어진 길 위를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마주한 길 밖의 집단이 군대였으니 태도가 좋지 못했던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포장할 수 있으려나. 훈련소 6주간(내가 훈련받던 당시에는 6주였다) 주먹다짐으로 이어질만한 사고는 없었지만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좀 있었다. 목소리가 커진 때도 있었고. 그래도 모두 무사히 훈련을 마쳤고 훈련이 끝나기 직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전화번호를 나누며 훈련소를 떠난 후에도 연락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그 후 연락을 나눈 사람은 없었다.



2


 입대한 후에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 뜨면 뛰고 훈련받고 쓸모없는 이유로 구르고는 했다. 웃을만한 일들은 없었고 그냥 하루하루 어떻게 보냈더라 되돌아볼 때쯤이면 이미 침상에 누워있는 그런 하루. 애초에 이런 날들에서 행복을 찾는 게 더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뭣도 없었고 공중전화로 전화도 못하게 했으니까.


 내가 훈련을 받던 기간은 2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의 기간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시작해 봄의 도입부에 끝나는 기수, 조금 몸으로 체감이 되게 이야기하면 추위로 시작해서 벚꽃으로 끝나는 기수였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 입대하고 감기로 골골거리는 동기들이 꽤 많았다. 아마 조교들 입장에서는 폐병 환자들을 모아놓은 기분이지 않았을까. 아침에 일어나 구보를 뛰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연이어 터지고 병든 닭마냥 훈련병들이 비틀거리면서 뛰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다면, 굴리는 입장에서도 꽤나 심란했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매일 똑같은 루틴을 보냈을 뿐인데 다들 나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뛰는 것 자체가 고역이던 시절을 지나 체력이 첫 주에 비해 확실히 늘었다고 체감도 되었고, 마지막 주에는 올라가지 못할 거 같았던 언덕도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뛰어올랐다. 껄떡고개라 불리는 언덕 정상에는 벚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펴있었고 우리는 그 벚꽃 잎을 맞으며 뛰어 올라온 만큼 다시 내려갔다. 매년 공군 4월 달력에는 이 계절에 훈련받는 훈련병들의 사진이 나오고는 하는데 거기 어딘가에 나도 있었을까.



3


 파란만장했던 훈련의 기억 중 기억을 하나 꺼내서 여기에 붙여본다면 유격 훈련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았나 싶다. 남자들은 다 아는 PT 8번,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물 코스를 통과했던 기억. 지금의 나도 운동신경이 좋은가?라고 하면 잘 모른다고 답하겠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운동신경이 좋지 못했다. 장애물 코스를 잘 넘지도 못했고 발이 걸려 비틀거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코스는 70도 벽 오르기 코스였다.


 군화를 신고 나무 벽을 빠르게 차고 올라가 넘어가는 훈련, 적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넘어가길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속력이 부족했는지 몇 번을 시도해도 벽 끄트머리까지 올라갔다가 넘어가지 못했다. 그때 내게 집중되는 시선은... 꽤나 비참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넘고 싶었다. 6주간의 과정을 거의 마친 상태였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어쨌든 보내고 있는데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게 포기하겠냐고 물어봤던 조교는 내 아니라는 대답에 그러지 말고 포기하라는 종용 대신 전혀 다른 말을 꺼냈다. 동기생이 이렇게 뛰고 있는데 힘내라고 한 번 외치자고.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응원을 듣고 바로 성공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게 내가 군대에서 처음 느꼈던 따뜻한 감정이었다. 안될 거 같지만 다 같이 소리 지르며 뛰면 어떻게든 되는, 말 그대로 군인정신. 사회에서는 이런 말들 참 싫어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군인정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료, 의리,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4


 긴 훈련이 무사히 끝나고 모두 각자 특기교육을 받기 위해 특기학교로 이동했다. 나는 기관정비 특기를 받았기에 군수학교로 빠졌고 거기에서 다른 중사, 상사 교관님들을 만나 수업을 들으며 기관에 대해 간략하게 배웠다. 솔직히 배운 내용들이 특별히 쓸모가 있지는 않았다. 원래 사회에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내용들이었고 교관님들도 입대병들의 수준을 고려해 그거보다 특별히 어려운 수준의 수업을 가르칠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군수학교에서 배우던 기간은 꽤 즐거웠다. 일이 아니고 순수히 배운다는 느낌으로 엔진에 접근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참고로 그때 함께했던 동창생들 중 대다수가 이미 전역했거나 전역을 앞둔 상태다. 군인을 양성하는 학교였고, 장기복무가 안 될거라는 이야기와 달리 우리는 모두 장기복무가 되었지만 우리가 복무할 때쯤 군대가 심하게 망가졌고 모두 회의감에 군을 떠났다.


 항공기가 좋아서 모였던 친구들이었고 전투기가 좋아서 장기복무까지 꿈꿨던 친구들이었는데. 고등학교는 너무 즐거웠지만 군대는 도저히 있을 곳이 아니었다, 지금 과거로 돌아간다면 고등학교때 더 즐겁게 보내고 군대는 장기복무 신청 안하고 일찍 그만뒀을 거 같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차마 부정할 수는 없어 씁쓸하게 웃고 넘기고 만다. 가장 최근에 전역한 같은 특기 동창생은 결혼하고 애까지 있는데,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군대 속에서 차마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으니 장기복무라는 안정된 길조차 포기하고 밖으로 나온 거겠지. 그 모습을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있다.



5


 나는 자대를 배정 받고 교육아 끝나자마자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날도 추적추적 비가 더럽게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비를 몰고 다니는 걸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늘 비를 몰고 다녔던 거 같다. 나를 태우러 왔다는 선임병들은 차에 타자마자 좋지 못한 소리를 하고는 했고, 여기는 악폐습이 심하다던데 진짜인가? 어렴풋하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그들의 목소리가 내 귀를 통과할 때마다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이다보니 기억을 찢어서 메모장처럼 붙여본다는 느낌으로 적어봤다. 훈련소 생활은 정말 돌아볼 거도 없이 바삐 지나갔던 시절이었다. 그냥 아침에 눈뜨면 뛰고, 밥먹고, 훈련하고, 뛰고, 밥먹고, 훈련하고... 당시에는 그게 싫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싫지만도 않은 느낌이다. 무엇보다 예전에는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게 싫었는데 훈련소를 지나고 군 생활을 하다보니 다같이 노래 부르면서 뛰는 게 싫지 않아졌다. 그리고 군가? 생각보다 부르면 즐겁다.


 다음 이야기는 병사 시절 이야기, 짧으면 한 편 길면 두세 편은 나오지 않을까. 사람도 있고, 종교도 있고, 취미도 있고. 또 찢어진 기억들을 모으다보면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을까 싶다.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 0. 전역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